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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제 Mar 23. 2024

초여름, 바람이 불면 후링의 소리가 울리기 시작해

여름이 시작하는 소리, ヨルシカ (요루시카) - 左右盲 (좌우맹)

2022년 겨울에 개봉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라는 영화.

일본의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영화관을 방문해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볼 기회가 많이 없었기에 이렇게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는 건 아주 큰 행운이었다.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필름의 자글자글한 느낌을 가득히 담고 있는 공원 데이트 장면.

봄과 여름의 경계선에서 일본 특유의 영상미가 덮어져서 인상적이었다.

잔잔하면서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있는 장면이었다.


두 번째는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재생되는 요루시카의 좌우맹.

듣자마자 들어본 목소리였기에 절대 내가 아는 가수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검은색 크레딧화면에 나오는 좌우맹의 첫 소절.

약하게 들리는 반주에 맞추어서 나오는 거느린 목소리.

이 도입부와 함께 크레딧이 올라오자 영화에서 느껴졌던 감정이 순식간에 한번 더 지나갔다.

많은 장면들 중에서 공원 데이트 장면이 생각났다.

집에 오는 길에 영화의 엔딩곡을 찾아보니까 역시나 알고 있는 가수 요루시카의 노래였다.

노래를 바로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했다.

영화를 보고 몇 달 뒤에 떠날 2023년의 일본에서의 생활이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2023년 일본에 도착하고 시간은 착실히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것들을 직접 해보고 느끼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마음속에서 외치는 것들을 해보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날이었다.

우연히 백화점 안에 있는 LOFT라는 잡화점에 들어가는 일이 생겼다.

여러 잡화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맑은 유리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후링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풍경과 굉장히 유사한 물건인 후링.

바람이 불면 그 아래에 있는 풍판이 흔들려 유리에 부딪치며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나는 일본의 여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물건들 중에 하나다.

그 맑고 경쾌한 소리에 가만히 후링이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여름이 왔구나 생각했다.


후링


후링 소리를 듣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불현듯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의 공원 데이트 장면과 요루시카의 좌우맹이 생각났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약한 바람에 잔잔하게 울리는 후링의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요루시카의 좌우맹이라는 노래의 도입부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후링의 소리를 들으면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와 요루시카의 좌우맹이 생각났다.

카미야 토오루와 히노 마오리가 생각났다.

불행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이 생각났다.


후링


후링은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떤 가게에 들어가거나 그냥 걷던 길거리에서 후링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들을 수 있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인 거 같다.

일부러 의식해서 찾지 않아도 어디선가 후링의 소리가 들렸다.

우연히 들린 신사에서도 정자에 걸려있는 수십 개의 후링이 흔들리는 순간을 볼 수 있었다.

유리종이 울리는 소리 덕분일까 더워진 여름에 청량함이 더해져 조금은 시원했다.

여름의 모든 순간에서 후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시간에 간 전시회에서도 에도도쿄건축정원에 있는 오래된 고택에서도 후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일본의 여름의 시작과 끝에서 후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름의 소리가 유리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貴方の心と 私の心が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ずっと一つだと思ってたんだ

언제까지라도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ヨルシカ (요루시카) - 左右盲 (좌우맹) 中



여름이 다가온 순간

절대 잊히지 않을 소리를 봤고

절대 잊히지 않은 순간을 들었어

햇빛이 비추면 아름답게 빛나는 후링의 유리종처럼 여름의 햇빛이 도쿄를 아름답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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