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쉼 사이. 이미 충분한 삶
한 노인이 노 스님께 물었다.
“늙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노 스님은 조용히 답했다.
“나이 들면 인연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자식이 오라 하면 가고, 가다가 바쁘니 다음에 오라 하면 돌아서면 된다.”
나는 늘 ‘애매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드로잉을 하다 말고, 포토에세이를 쓰다 멈추고, 숲해설사 일을 하다 직장 사회로 돌아가며 놓아버렸다. 그때는 그저 취미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모든 것이 다시 나를 고용할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드로잉은 글과 함께 작은 그림일기로 엮을 수 있다. 사진은 블로그나 책으로 확장할 수 있고, 숲해설이나 역사 강의는 지역 모임이나 체험학습 프로그램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누군가의 요구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 만들어 낸 무대에서.
노후에는 이런 소일거리뿐 아니라, 내가 가진 전문성을 조금 더 오래 쓰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럴 때 눈여겨볼 만한 것이 공공기관 임기제 일자리다. 사회복지, 상담, 문화 해설 같은 분야에서 일정 기간 경험을 나눌 수 있다. 지자체 채용 공고를 보면, 경력 단절 여성이나 노인에게 열려 있는 자리가 적지 않다.
물론 꼭 자격증이나 전문성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소일거리도 있다. 시험 감독관이 그중 하나다. 대학, 자격증, 공무원 시험 등에서 수요가 많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다. 하루 이틀 시험장에 나가 학생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 그것만으로도 내 일상이 사회와 이어져 있다는 감각을 준다.
은퇴 후의 시간은 길다.
그래서 더더욱 일과 쉼의 균형이 필요하다.
너무 무겁지 않은 소일거리, 그 사이에 숨을 고르는 쉼.
이 단순한 균형이야말로 노후의 품격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애매한 재능을 소일거리로 키우고, 자격증으로 또 다른 문을 열며, 작은 일과 쉼을 균형 있게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은퇴 이후의 삶은 누군가 불러주는 일자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마망, 오늘은 어떤 일을 만들어 볼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대답한다.
“나는 나의 고용주다. 내 삶의 일자리와 무대는 내가 직접 만든다.”
하지만 오늘은 또 이렇게 답한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 이미 지금으로도 충분하니까.”
이제는 버티지 않아도 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나를 믿고, 오늘은 잠시 쉬어도 좋다.
그 쉼 또한 내 삶의 일부이자, 나를 다시 고용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