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견뎌주며 자랐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빠, 이번 연휴에 이순신 전시회 같이 가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순신 전시회는 남편이 가족과 함께 보고 싶어 하던 전시였다.
아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한 문장은 우리 집에서는 거의 사건에 가까웠다. 그날 저녁, 와인잔을 기울이며 남편과 아들은 이순신 장군 이야기로 시작해 끝없는 이야기의 세계로 달려갔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예전과는 달랐다.
남편은 생존이 가장 중요했던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서 믿었다.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는 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지 않았다.
의견이 다르면 “틀렸다”고 단호했고,
도움을 청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들은 훈련이었을지 모르지만 아들에게는 늘 시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들은 아빠의 인정을 갈망했고 그 갈증은 오래 남았다.
우리는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들은 아빠와 처음 해외여행을 갔다.
중국이었다.
아들은 첫날 밤, 호텔 방에 혼자 남겨진 시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무섭고, 두려웠고, 버려진 것 같았다고.
남편은 말한다.
같이 간 일행이 있었고 안전했다고.
사실과 감정은 언제나 같은 편이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무렵, 남편은 환단고기 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아들이 조심스럽게 다른 의견을 말했을 때 남편은 또다시 “틀렸다”고 했다.
그날 이후 아들은
아빠와 감정을 나누는 대신
고립을 선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집 안에서
각자의 골짜기를 살았다.
시간은 우리를 더 거친 자리로 데려갔다.
젊은 생존자로 달려오던 남편은 이른 퇴직을 맞았고,
아이들은 취업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나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파도를 넘기 바빴다. 그 시절은 말 그대로 ‘살아남기 미션’ 같았다.
그렇게 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누가 치료해 주지 않아도 각자의 상처를 각자의 속도로 봉합하며 살아왔다. 긴 여름이 지나면
어느 날 공기가 달라지듯 우리도 지금 그런 계절에 와 있는 것 같다.
남편은 새벽시장에서 노동하며 묵묵히 가장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아들은 취업 전쟁 속에서 삶의 고단함을 배우고 있다.
일찍 자기 일을 찾은 딸은 자기 몫의 성숙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은 부모의 부족함을 한 방향으로만 보지 않는다.
상처를 ‘사건’이 아니라 ‘삶의 맥락’ 속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를 가장 놀라게 했다.
나는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견뎌주며 자라고 있었다.
상처를 견디는 법을 아이들에게서 배웠고,
해석하는 힘을 아이들에게서 배웠다.
어쩌면 부모는 아이를 통해 다시 자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문득 한 노랫말이 떠올랐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지나간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리에 놓이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긴 시간의 상처와 외로움을 서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조금씩 얻어가고 있다.
아들의 한마디로 시작된 연휴가 우리 가족의 계절을 천천히 바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