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헌나라에 어린이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들은 어른들에게 새나라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랐답니다. 그곳에 간 어린이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산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무나 갈 수는 없고, 오직 선택받은 어린이들만이 갈 수 있다고 했어요. 바로 어른들 말씀 잘 듣는 착한 어린이였쬬. 떼를 써서도 안 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했어요. 그 약속을 철썩 같이 믿은 어린이들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꾹 참고 어른들 말을 잘 따랐어요. 그곳으로 가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요.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어린이들은 자라서 어른이들이 되었어요. 그리고 여전히 헌나라에 살고 있었죠. 한때 세상의 전부였던 새나라에 갈 거란 약속은 어느샌가 흐지부지 되어버렸어요. 자신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죠. 문득 그 약속이 생각났을 땐, 이미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어요. 정작 어른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죠. 어른이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책임져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한편, 새 나라에 간 어린이들이 진짜 있을지 궁금했어요. 그들은 진짜 있었고 심지어 아주 많았답니다. 엄마 친구 아들딸들, TV 속 유명인들, SNS 사진 속 등등. 새나라에서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 그들은 모든 걸 다 가진 채 아주 행복해 보였어요. 그들은 대체 거길 어떻게 간 걸까ᆞ요? 새 나라에 가는 기준이 꽤나 까다로웠는데 말이에요. 어른들 말씀을 한번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잘 들었던 걸까요?
헌나라에 남겨진 어른이들의 배신감과 궁금증은 여전히 플리지 않았지만, 당장 코 앞에 닥친 현실을 살아가기만도 벅찼거든요. 어느새 체념하듯 현실에 순응했고, 새 나라는 그저 멀고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렸어요. 이따금 새 나라에서 잘 사는 친구들을 볼 때면 그저 부럽기만 했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요.
그렇게 새 나라를 꿈꾸던 어린이들은 헌나라에 남겨진 어른이들이 되었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어른이가 되고보니, 헌나라는 더욱 가혹하고 잔인한 곳이었거든요. 아무도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해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부정 당하기 일쑤였고, 남들의 요구만 들어주기 바빴죠.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집, 학교, 직장, 사회 어디에서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미워하는 법만 끊임없이 알려줬죠. 어른들 말씀만 듣고 자란 어른이들은 자신이 누구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자발적으로, 옆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열심히 따라하기 시작했죠. 자신보다 못나 보이면 무시하고, 잘나 보이면 시기하면서요. 남들과 달라 보이고, 남들보다 뒤쳐지는 걸 제일 무서워했어요.
억울함과 공허함은 점차 쌓여 갔지만, 누구탓도 할 수 없었어요.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거든요. 게다가 이런 생활이 어딘가 불편하면서도 금세 익숙해졌어요. 문제가 뭔지 알아차리기는 어려웠죠. 벗어나기는 더욱 쉽지 않았고요. 그런 세상이 전부였으니까요. 애꿎은 자신만 더욱 더 몰아붙였죠.
언제부턴가 그들의 발목엔 족쇄가 채워져 있었어요. 그 족쇄엔 아주 못된 주문이 걸려있었죠. 자신을 현혹하고 해치는 나쁜 말들이요. 헛된 대상을 쫓고, 자신을 끊임없이 미워하고 의심하도록 만들었거든요. 처음엔 남이 함부로 툭 던진 말로 시작했지만, 점점 스스로 가담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네 것인지 내 것인지 모를 나쁜 말들이 뒤섞여 나를 향했고, 그걸 진짜로 믿게 되었던 거예요. 사람들은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면서도, 족쇄를 풀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애시당초 풀릴 거라 기대조차 하지 않았죠. 어느덧 그 존재가 아주 당연해져버렸거든요. 족쇄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일 정도로요. 힘든 건 느껴도 왜 힘든지는 몰랐어요. 탓할 거리는 많았거든요. 주위 상황, 지난 과거, 다른 사람 등.
그리고 그들은 가축우리 안에서 지냈어요. 어릴 적부터 그곳에서 가축처럼 길러졌던 거에요. 울타리로 둘러싸서 보호해주고, 때 되면 여물 주고, 치워줬지만, 마치 제값 받고 팔아치우려는 목적에서 통제만 하는 것처럼요.
우리 모두, 하나의 인격과 개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 걸, 왜 아무도 몰라주는 걸까요? 맡은 역할 이전에 사람이란 걸 말이죠. 그러다 이내 깨달아요. 어른들도 옆 사람도 새 나라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을요. 그저 헌나라에 남겨진, 나와 똑같은 어른이들일 뿐이었죠.
여기, 헌나라의 어른이들 중에는 이런 생활에 유독 숨이 막히는 어른이가 한명 있었어요. 그는 헌나라에 끝끝내 적응하지 못했고, 가축 우리 밖으로 밀리고 밀려 결국, 쇠사슬에 묶인 채 방공호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어요.
굳게 닫힌 문, 쓰레기로 가득 찬 방, 언제 씻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몸.
이렇게 지낸지도 벌써 7년이란 시간이 흘렀죠.
그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에요. 그도 한때는 새 나라에 가길 꿈꿨었거든요. 어른들 말씀도 잘 따랐고요. 그러나 계속되는 채찍질에 갈수록 목표는 높아지고, 어깨는 무거워지고, 그는 작아져만 갔어요. 화려한 미래는 어느새 까마득히 멀어져버렸고, 꿈조차 꿀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이 되어버렸죠.
그래도 괜찮았어요. 헌나라는 넓고, 나 하나 받아줄 곳은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근사하진 않더라도, 열심히 하면 나름 인정도 받고 꼭 새 나라에 가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헌나라엔 무시무시한 포식자들도 같이 살고 있었어요. 어쩌면 그들도 한때는 새 나라를 꿈꾸던 어린이들이였을지도 모르죠. 그러다 꿈이 좌절되고 헌나라에 남겨지자, 화풀이 할 대상이 필요해진 걸지도 몰라요. 그들은 주로 떼를 지어 다니며, 먹잇감 하나를 사냥했어요. 어쩌면 상대방은 자신이 공격 당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었죠. 그들은 아주 악랄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공격했거든요. 도리어 상대방 탓을 했어요. 요구인지 비난인지 모를 공격을 마구 퍼부으면서요.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그들의 맘에 들 수 없었어요. 그렇게 상대는 눈치만 보다가 점점 쭈그러들게 되었죠. 어른이도 그런 자들에게 호되게 당했던 거에요.
그렇게 한없이 위축된 어른이는 안타깝게도, 본인이 크게 부족해서 남들에게 피해만 준다고 믿게 되었어요. 그래서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을 소소한 일을 찾고, 만족하며 근근이 살아가고자 하죠. 그럼에도 여전히 열심히만 하면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하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사사건건 트집 잡히기 일쑤였거든요. 참아봤지만 갈수록 심해져만 가고, 결국 한계에 다다르고 나서야 그만두기로 해요.
그러자 놀랍게도 그들의 태도가 싹 바뀌었어요. 일처리가 아주 마음에 든다며 붙잡았죠. 그런 그들의 태도에 어른이는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어요. 열심히 할수록 가해지던 채찍이 그만둔다고 하자 멈췄으니까요. 이젠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 산산이 부서져버렸어요.
어른이는 그렇게 여러 가축우리를 전전했고, 이 악물고 버티려고도 해봤지만, 소용없었어요. 숨을 꾹 참아도 결국 토해내는 것처럼, 꾹 참고 일해도 결국 뛰쳐 나올 수밖에 없었죠.
크게 상심한 어른이는 언제부터인가 집 밖에 잘 나가지 않았어요. 밖에선 총알이 날아다니고 폭탄이 터졌거든요. 처음엔 조금만 있으면 그칠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죠.
벗어나려 여러 번 시도도 해봤지만, 다 소용 없었어요. 일하지 않은 시간 동안 빈 공백기만 쌓였고, 그걸 문제 삼는 비릿한 웃음만 돌아올 뿐이었죠. 이쯤되니 어른이는 그들에게 따져묻고 싶었어요. 내가 이런 공백을 갖게 된 건, 바로 당신들 때문이라고. 그들이 퍼부은 말들은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혔고, 오래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그 위로 새로운 상처가 쌓여갔어요. 급기야 선택이 두려워지고 시작조차 막막해졌죠.
어른이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들과의 마찰도 점점 심해졌어요. 이제 밖에서 날아다니던 총탄이 집안에서도 빗발치기 시작했죠. 오직 자신의 방 만이 안전하다고 느껴졌고, 그렇게 쇠사슬에 꽁꽁 묶이고 방공호 속에 꼭꼭 숨어버렸던 거에요. 그 쇠사슬엔 온갖 나쁜 주문들이 걸려 있었죠. 가족들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어요. 그 속에서 그는 세상을 탓했고, 가족들을 원망했어요. 자신이 상처받을 땐 신경도 안 쓰다가, 상처받고 무너져내린 모습만 보고 비난과 조소를 실컷 퍼붓는다면서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답답하고 외롭기도 했어요.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거라는 걸 왜 아무도 모를까요. 밖이 안전하지 않아, 그저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것뿐인데. 하지만 어른이는 그 누구보다 나약하고 한심한 스스로가 제일 밉고 원망스러웠어요.
그리고 이젠 이 방공호마저 숨이 막혔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어요. 바깥에선 여전히 총탄을 퍼부어댔으니까요. 나가는 즉시, 총에 맞거나 폭탄에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거든요.
새나라의 어린이들은 어떤 세상을 사는지 모르겠지만, 헌나라의 어른이들은 족쇄에 묶인 채 가축우리 안에서 살아가요. 아니면, 쇠사슬에 칭칭 감긴 채 방공호 속에 갇혀버리거나요.
그런데, 사실 그들도 그 속에서도 남몰래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어요. 이미 패배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에요.
과연 그들은, 이 끝없는 사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대로, 헌나라에 머물게 될까요?
새 나라에 가서, 살게 되는 날이 오긴 할까요?
그런 그들에게도, 과연 ‘희망’은 남아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