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과연 현실이 될까1

by 이정표

드디어 콘서트 예매 날이 다가왔다. 예매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우리는 이미 PC방에 모여 있었다. 이번만큼은 게임회사 프로그래머 한점이 모든 것을 도맡아 진두지휘했다.

우선, 우리가 앉을 자리부터 점검에 들어갔다. 한점은 상상 이상으로 철저했고 컴퓨터의 반응 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리면 곧바로 자리를 교체했다. 그렇게 나와 칼이 한자리를 띄워서 같은 줄에 앉고, 바로 맞은편에 향수 아저씨, 한점, 챠키 언니 순서대로 나란히 붙어 앉았다.

"이 브라우저는 미세하게 느려. 기본 설정부터 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바쁘게 자리를 옮겨 다니는 한점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내 눈에는 그런 그의 머리 뒤로 환한 후광이 비쳐 보였다.

그렇게 예매 사이트 접속도 마치고, 각자의 휴대전화도 동일한 환경으로 설정을 끝마쳤다. 모든 설정을 완료한 뒤, 어느 좌석이 최우선 목표인지, 예매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에 관한 한점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초반 3초 안에 승부가 갈립니다. 가장 좋은 자리는 2열 중앙이에요. 기억하세요, 2열 중앙!”

곧바로 예매 시뮬레이션이 시작됐다. 우리는 어느새 막중한 임무라도 부여받고 곧 작전에 투입될 군인들처럼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만 빨리 누르면 된다는 거지?"

향수 아저씨가 마우스를 빠르게 클릭하며 말했다.

"살다살다 이런 건 또 처음 해보네. 컴퓨터는 겨우 타자나 치는 정도인데, 이렇게 급하게 배운다고 내가 할 수 있으려나. 뭐, 젊은 사람들 많으니까, 그 중에 누가 되겠지. 나같은 늙은이야 영..."

아저씨는 회의적이고 자조섞인 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는 타자도 잘 못 쳐요."

차키 언니는 한점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의 빈자리 너머로 향수 아저씨를 향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끝낸 뒤, 예매 시작 시각이 다가오자 우리는 더 초조해져서 시계를 흘끔거렸다. 그 사이에도 한점의 당부는 계속됐다.

“시작하자마자 새로고침 버튼 누르는 거, 절대 잊지 마세요.”

드디어 예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일제히 숨을 죽이고, 한점이 세는 카운트다운 소리에 모든 신경을 기울였다.


“10, 9, 8…”


침묵 속에서도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칼의 침 삼키는 소리가 한 자리 건너 내 귀에까지 들렸다. 정적을 깨는 건 다른 자리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게임 소리뿐이었다. 카운트다운을 듣고 있자니, 이제는 우리가 마치 우주선 발사를 기다리는 NASA 요원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7, 6, 5, 4…”


손발이 얼어붙고, 손끝이 떨려왔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요동쳤다. 준비는 철저했지만, 머릿속은 점점 불안으로 뒤덮여 갔다. 정말 될까? 늘 실패만 반복하던 내가, 이번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한점만 빼고 나를 포함해서 다들 콘서트 예매는 처음이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3, 2, 1… 시작.”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곳곳에서 마우스 클릭 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딸깍, 딸깍—

그것은 마치 인류의 운명을 짊어지기라도 한 듯, 필사적이고 절박했다.

시작과 함께 나도 곧바로 새로고침 창을 눌렀다. 하지만 보이는 건 새하얀 빈 화면뿐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도 화면처럼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빈 화면 너머로 콘서트 좌석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자리쟁탈전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우려했던 대로 접속이 몰렸고, 손 써볼 틈도 없이 나는 경쟁에서 밀려나버렸다. 3초 안에 승부가 난다고 했는데, 끝났구나 싶었다. 의구심이 확신으로 변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절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역시나... 그럼, 그렇지. 오프라인 사회에서도 밀리더니, 이젠 온라인에서마저 밀리는구나...’


"비켜 주세요. 비켜 주세요."


어디선가 애타는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예매에 온 신경을 집중한 나는, 그저 여러 소음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게 나를 향한 것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서빙 로봇이 치킨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지나가려다 내가 앉은 의자에 가로막힌 참이었다. 하지만 계속된 부탁에도 반응이 없자, 이내 체념한 듯 의자 뒤를 비집고 지나가려 애쓰고 있었다. 앞뒤로 왔다갔다 움직이는 로봇의 간절한 몸부림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나는, 황급히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엄숙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체념에 가까운 나와는 달리, 그들은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됐다!!" 차키 언니가 소리쳤다.

"어, 나도 됐어!!" 이윽고 향수 아저씨도 외쳤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외침에도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진 믿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반신반의한 채로 그들의 자리로 갔다. 두 사람은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듯,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향수 아저씨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모니터 화면만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니터 화면을 번갈아 확인하는 내 두 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 화면엔 예매 완료라고 선명하게 떠 있었고, 결제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그 순간, 모든 긴장과 의구심이 사라지며, 환호가 터져나왔다.

"와! 붙었다!"

나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피씨방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공무원 시험에라도 합격한 줄 알았을 것이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항상 실패만 반복하던 내게 이런 행운이 오다니 말이다.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가, 향수 아저씨와 차키 언니를 차례로 끌어안았다, 엉겁결에 내게 안긴 두 사람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기쁨을 주체 못하는 나를 보더니 이내 뿌듯해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칼도 어느새 내 옆으로 와서 작게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고 있었다. 두 사람 가운데 앉은 한점의 모니터 화면은 나와 같은 텅빈 흰색이었다. 우리 중 누가 성공한다면 당연히 한점일 거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그의 조력이 아니었다면 이런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살짝 멋쩍어 하면서도, 예매에 성공한 두 사람을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지시에 따라 임무를 충실히 마치고 돌아온 대원들을 보는 듯 했다.

맘껏 기뻐하다가 이내 정신이 돌아온 나는, 살짝 울먹이며 모두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다들... 고마워요, 정말..."

예매에 성공한 향수 아저씨와 챠키 언니는 물론이거니와 기꺼이 시간을 내준 칼, 그리고 이 모든 걸 도맡아서 세심하게 신경써준 한점까지.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향수와 챠키 두 사람의 머리 뒤에서는 금빛 후광이 번쩍이는 듯했다.

이제는 행복한 고민만이 남아 있었다. 원래는 같이 갈 동행을 한명 정하려고 했지만,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바람에 결국 나 혼자 가게 되었다. 두 좌석 중 하나를 골라야만 했는데, 모두 무대와 가까운 좋은 자리인데다, 괜히 두 사람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거 같아 미안한 마음에 망설여졌다. 결국, 무대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자리로 선택하고, 다른 하나는 취소했다. 콘서트는 한달 뒤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렇게, 가장 불가능할 것 같았던 우리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는 놀랍도록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날 이후, 내 일상은 조금 달라졌다. 콘서트에 갈 날을 기다리면서,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시간들에 의미가 생기고, 문득문득 설레임이 찾아왔다. 남들 눈에는 그래봤자 콘서트, 결국엔 죽음인 허무와 비극이겠지만, 내겐 설레임이자 안정감이었다.

곧 죽을 거란 사실은 소속도 미래도 없는 내게 처음으로 확실한 보장이 되어주었고, 콘서트에 가는 건 다이어트를 앞두고 언제 다시 먹을지 모르는 치킨을 먹는 것과 같았다. 그토록 꿈꾸던 콘서트를 죽음을 앞두고 보게 된다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긴 했지만,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이 생애 마지막 기억이 된다는 게 꼭 나쁜 것 같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버킷리스트가 태어나, 유일하게 잘한 일이 되어버렸다. 또한, 유일하게 성공한 일이기도 했다.

마지막이 될 콘서트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 마음에 응원봉도 미리 사놓고, 입고 갈 옷도 진즉에 정해두었다. 하루 대부분을 와이낫 콘서트 공연 영상을 보면서 보냈다. 실제로 가서 보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말이다. 하도 많이 상상하다 보니, 이제는 눈을 감기만 해도 마치 공연장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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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관중으로 꽉 찬 공연장은 시작도 전부터 이미 열기로 후끈하다.

이내 조명이 어두워지고, 웅성거리던 소리도 차츰 잠잠해진다.


갑작스레 터지는 폭죽.

눈부신 조명과 함께, 마침내 가수가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와 동시에, 관객들의 터질 듯한 함성이 공연장을 집어삼킨다.


가수는 단숨에 무대를 장악한다.

폭발적인 가창력, 눈을 떼기 힘든 퍼포먼스,

여유로운 눈빛과 매혹적인 제스처.

그는 꼭, 이 무대를 위해 살아온 사람 같다.


번쩍이는 조명과 고조되는 리듬 속에서 열기는 점점 끓어오른다.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경에 두 눈과 귀는 쉴 틈이 없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관객들은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어느새 떼창이 시작되고,

가수와 관객은 완벽히 하나가 된다.

오가는 노랫말 속엔 서로를 향한 진심이 녹아들어 있다.

목이 울컥 메고, 가슴이 찡해진다.


공연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아쉬움은 짙어져 간다.

계속되는 앵콜 요청에도,

결국 무대는 막을 내리고 만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여운은 가시지 않고,

열기 또한 쉽게 식지 않는다.

떠나는 가수의 뒷모습이라도 보려는 사람들로

공연장 밖은 북새통을 이룬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사람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천천히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자니, 눈 앞에 생생한 무대가 펼쳐진다.

환한 조명, 울려퍼지는 함성, 풍성한 선율의 음악,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무대가 아닌 관객석을 바라본다.

무대 위에 선 그 가수는

이제 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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