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날은 금세 다가왔다. 가족들은 모두 외출 중이라 집 안은 조용했다. 나는 외출 준비를 위해 방을 나섰다. 샤워를 하려고 들어간 욕실에서, 오랜만에 본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늘 누워만 지내다 보니 걷는 게 오랜만이라, 걸음걸이도 어색하기만 했다. 모든 채비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 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들고, 현관 밖으로 나섰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날씨는 맑고 화창했으며, 후덥지근한 기운이 감돌았다. 겨울은 이미 지나고, 어느새 여름이었다. 쌀쌀할 줄 알고 껴입은 옷들이 괜히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었다. 그렇게, 7년 만의 첫 외출은 조금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문밖으로 나서면 총탄이라도 날아올 줄 알았는데, 세상은 뜻밖에도 평화로웠다. 마침 어린이날이라 대낮에도 길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부모님과 손잡고 나온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했을 땐 이미 조금 늦은 뒤였다. 사람들은 모두 와 있었고,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 한구석을 차지한 그들은,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표정은 딱히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다. 간간히 웃음이 터지고, 잔잔한 미소가 오고갔다. 죽음을 앞두고 죽음 얘기를 하러 모인 사람들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그들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뒤늦게 자리에 합류한 나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앞서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는 진동벨이 울리자 1층에 있는 카운터로 향했다. 내가 시킨 건 시원한 블루베리 스무디였다. 외출도 카페 나들이도 너무 오랜만이라, 눈앞의 스무디가 꼭 포스터 속 광고 사진처럼 보였다. 무더운 날씨에 뛰어 오느라 땀을 흘리다보니,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음료를 받아 다시 사람들이 있는 2층으로 향하면서, 나는 그들의 인상을 찬찬히 떠올려보았다. 약속 장소로 가는 내내 이상한 사람들이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가 머릿속을 맴돌았었다. 그런데 직접 마주한 그들은 너무나 멀쩡하고 평범해 보였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길에서 마주쳤다면, 이런 자리에서 만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우중충한 먹구름이라도 몰고 다닐 줄 알았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죽으려는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모인 장소도 죽음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그 괴리감이 묘한 울림을 주었다.
자리에 다시 앉은 나는 어색함에 스무디만 홀짝이고 있었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게 무척 오랜만이었다. 이들과는 단톡방에서 이미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실제로 마주하고 보니 어딘가 낯설고 어색했다. 사람들은 서로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고 있었고, 오면서 가졌던 우려와 달리, 이젠 내가 이상해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으아앙, 나 민트초코 한잔 더 마시고 싶어.”
“안돼. 단거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로워. 너 자꾸 이러면 나쁜 어린이라 새 나라에 못간다.”
음료를 한잔 더 사달라며 떼쓰고 조르는 아이를 부모가 다그치고 있었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새 나라 얘기가 나오자 입만 쑥 내민 채 얌전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어린시절이 떠오른 내가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거 혹시 기억나요? 왜 우리 어렸을 때, 어른들이 새 나라 얘기했던거요.
어른들 말 잘 듣고 착하게 굴면 새 나라 가서 살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러자 사람들이 저마다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맞아 맞아. 기억나요. 나도 그 말 많이 들으며 자랐어요.”
“9시 이전에 자면 새 나라에 갈 수 있다고 했었죠. 그래서 8시 반에도 잤었는데.”
“산타 얘기도 있었죠. 울면 선물 안준다고.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이제 보니 다 어른들이 자기네들 편하려고 지어낸 말들이었어요.”
“맞아요. 지금 보면 다 거짓말이죠. 그런 건 없더라고요. 착하고 말 잘 들어야 한다.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 어른이 되고나서도 그런 말들 참 많이 들었는데. 어릴 때만 듣는 말도 아닌 거 같아요.”
“저희, 그럼 다들 모이셨으니까… 자기소개부터 제대로 하고 시작할까요?”
사람들을 둘러보던 30대 후반쯤 되어보이는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의 말에 웅성거리던 소리가 잦아들고 이내 조용해졌다. 그러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닉네임으로 소개해주시면 되고요. 왜 그렇게 지었는지도 말씀해주시면 좋겠네요.
지금 하시는 일이나 하고 싶은 말씀도 편하게 해주세요.”
다섯 명의 사림이 모인 자리에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소개가 끝날 때마다 박수 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6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투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제 닉네임은 ‘향수’입니다. 칙칙 뿌리는 그 향수가 아니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그 노래 있잖아요. 고향이 경상도 00인데, 먹고살기 바쁘단 핑계로 못 내려간 지 꽤 됐네요. 어머니 돌아가신 뒤론 더더욱이요. 그래서 그 노래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사업하다 망해서 지금은 개인회생 중입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는데, 이젠 가족들 얼굴 보기도 민망하네요.”
이어서 수더분한 인상의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가 경쾌한 말투로 말했다.
“제 닉네임은 ‘챠키’예요. 전업주부고, 고등학생 딸 하나 키우고 있어요.
왜, 차 키는 필요할 땐 찾다가, 필요 없어지면 휙 던져버리잖아요?
그게 꼭 저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지었어요.”
다음은 사회를 보던 30대 남성의 차례였다. 그는 큰 체구에 안경을 쓴 선한 인상이었다.
“전 ‘칼’이에요. 기억하기 쉽죠? 영어 이름 같기도 한데, 진짜 칼 맞습니다. 부엌칼.
사람들 말에 상처받을 때 보면, 마치 칼에 베이는 것 같잖아요. 저도 그런 말들에 베여서 피 흘리듯 살고 있는 느낌이라… 그렇게 지었어요.
기획부서에서 일하고 있고요, 요즘은 병가 내고 쉬고 있어요. 회사에선 치이고… 와이프는… 신혼인데 외도를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별거 중입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차례가 다가올수록 두근거리던 심장은 이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저는… 제 닉네임은 ‘싱어’고요. 제가 가수 와이낫을 좋아해요. 집에만 있는 저랑 다르게, 무대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모습이 부러워서… 그래서 그렇게 정했어요.
전…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는 핑계로 집에만 오래 있었어요. 시험은 다 떨어졌고요…”
너무 긴장해서인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더듬고 횡설수설했다. 그렇게 소개를 겨우 마치고 자리에 앉고 나니, 방금 전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일 어려보이는 20대 중반 청년이 입을 열었다. 그는 뚜렷한 이목구비에 마른 체구를 가진 날카롭고 과묵한 인상이었다.
“전 ‘한점’이에요. 그냥, 저도 세상에 여러 점들 중 그냥 한 점으로 존재하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어요. 게임회사 개발자입니다. 다 그만두고 싶어서 사직하려 했는데… 회사에서 붙잡아서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세상에 한 점으로 존재하고 싶다라…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렇게 한점을 끝으로 자기소개는 모두 끝이 났다. 실제로 한자리에 모이고 보니, 죽고 싶다는 공통점 하나를 빼고 우리는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제각각이었다.
기획자로 일한다는 칼이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모임을 이끌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과 일정부터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단톡방에서 얘기한 대로, 죽는 건 뒤로 미루고 버킷리스트 먼저 실천할 거에요.
어떻게 죽을지는 죽기 하루 전날 다시 의논하기로 해요.”
기한은 한달로 정하고, 버킷리스트는 1인당 1개씩 하기로 결정됐다. 죽기 전 진짜 해보고 싶은 한 가지를 신중히 골라야 했다. 되도록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돌아가며 한사람의 버킷리스트를 다같이 돕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버킷리스트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에 단톡방에서 ‘꿈’을 말할 땐 술술 나왔지만, 실제로 해야하는 ‘버킷리스트’는 고민이 많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생일대 마지막이 될 버킷리스트를 신중히 고르고 있었다. 향수 아저씨와 챠키 언니는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눴고, 한점은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겼으며, 칼은 수첩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각자 정한 버킷리스트를 그렇게 정한 이유와 함께 돌아가며 발표했다.
이번엔 나부터 시작했다. 막상 말하려니 괜히 또 긴장되고, 비웃음을 사면 어쩌나 내심 걱정도 되었다. 나는 콩닥콩닥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얘기를 시작했다.
“전, 죽기 전에… 와이낫 콘서트에 꼭 가보고 싶어요. 공무원 시험 붙고 당당한 사회인이 되면 꼭 가려고, 그동안 미뤄왔었거든요.
그렇게 미뤘던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고요...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보시다시피 은둔을 시작하면서 사회와는 거리가 멀어져버렸고, 어느 순간부터 저런 콘서트는 남들 다 가도 나는 못가는 곳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어느새 잊혀져버렸고, 오늘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떠올랐어요.”
다들 내 얘기를 진지하게 경청했고, 공감한다는 듯 끄덕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얘기가 끝나자 작게 들리는 박수 소리에 마음이 살짝 뭉클하기도 했다.
다음은 향수 아저씨 차례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된장국이 너무나 먹고 싶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 사업에 실패하고 나니 해맑던 어린시절과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부쩍 많이 나네요. 그 시절이 참 그립네요.”
죽기 전 하는 버킷리스트 치고 너무 소소해서 놀랐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그 다음엔 챠키 언니 차례였다.
“놀이공원에 가보고 싶어요. 한때 가족들이랑 자주 갔었거든요. 우리 딸이 초등학교 때요. 그때만 해도 참, 행복한 가정을 꾸릴 줄 알았어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돼서, 다정한 남편, 사랑스러운 딸이랑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 줄 알았어요. 가족들이랑 다시 가보고 싶지만, 그럴 순 없을 것 같네요.”
내내 활기차 보이던 챠키 언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하고 나니 꿈꾸던 가정과 현실 간의 간격이 더 크게 느껴지는 듯 했다.
“전, 글쎄요, 뭐라고 해야될지 잘 모르겠네요... 아내가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거든요.”
사회자인 칼이 자신의 차례가 되자, 머뭇거리더니 이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천문과학관에 가보고 싶어요. 한때 자주 갔었는데 언제부턴가 못 가게 되었거든요.”
한점의 살짝 아리송한 말을 끝으로, 버킷리스트 발표를 모두 마쳤다.
어른이들은 곧장 죽음나라로 향하는 대신,
헌나라를 떠나기 전 들러보고 싶은 곳들을 가보기로 해요.
오래전부터 마음에만 품고, 실천하지 못했던 곳들이었죠.
혼자서는 무리였지만, 함께라면 가능했어요.
"자, 그럼 이제 뭐부터 시작할까요?"
"콘서트부터 시작하죠. 와이낫 콘서트 티켓팅이 곧 시작되거든요."
칼의 물음에 한점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제일 어려운 걸 하게 되네요. 그 가수 인기 엄청 많던데, 성공할 수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챠키 언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티켓팅? 그게 뭐죠?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혼자 어리둥절해 하는 향수 아저씨에게 옆에 앉은 챠키 언니가 설명해주었다. 아저씨는 티켓팅 대신 예매라고 하자 알아들었고, 나훈아 콘서트를 예시로 들자 우리의 걱정을 단박에 이해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일단 해봅시다. 혹시나 실패하면 다른 걸 하면 되죠.”
그렇게 모든 걸 이해한 아저씨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게 우리가 처음으로 실행할 버킷리스트는, 내 오랜 꿈인 '와이낫 콘서트 가기'가 되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찰서에 들렀다. 그리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신고를 마쳤다. 과거로 보내준다던 그 사기꾼을 말이다.
"잡기 힘들어요. 해외 IP라 추적이 어렵거든요."
경찰의 반응은 역시 예상대로였지만, 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집에 도착하니, 아직 날은 밝고 가족들이 올 시간은 한참 남아 있었다. 나는 으레 그렇듯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의 외출은 무사히 끝이 났다. 걱정했던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평온함을 느끼려던 찰나, 이불에서 꿉꿉한 냄새가 올라왔다. 쓰레기와 먼지로 어지러운 방도 눈에 들어왔다. 암막 커튼이 쳐진 방이 어둡게만 느껴졌다. 일어나 커튼을 열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순식간에 방 안이 환해지고, 시원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바람을 맞으며, 곧 있을 콘서트 예매를 생각하자 가슴이 살짝 설레었다. 다가올 날에 희망을 품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