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뉴월드님 맞으세요? 쪽지 보고 왔는데요.”
“어서 와요. 맞게 잘 오셨어요. 사연 잘 읽어봤어요.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이제 걱정 안하셔도 돼요. 다 바뀔 테니까요.”
채팅방에서 만난 그는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 같아 보였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었다. 사람과 대화를 나눈 것도 오랜만인데다, 따뜻한 위로와 환대까지 받으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직접 듣는 그의 이야기는 글로만 읽을 때보다 훨씬 생생하게 와 닿았다.
서로 살아온 인생 얘기를 한동안 나누다,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두가 과거로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아무리 자기가 도와준다 한들, 본인이 준비와 자세가 되어있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했다. 간절한 마음이 큰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게 바로, 자기가 아무나 보내줄 수 없다고 했던 이유라고 했다.
과거로 가려면 영이 맑고, 과거와 주파수도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걸 위해 에너지 정화와 주파수 맞추기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련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을 소개했다. 그 물건들은 언뜻 평범해 보여도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인 신성한 매개체라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과거로 가도록 도와준다는 건, 그의 시간과 정성이 담긴 이 물품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품은 구성품목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저렴한 건 100만원부터 시작해서 비싼 건 1억도 넘어갔다. 비쌀수록 성공 확률도 높아지고 더 빨리 갈 수 있었다. 저렴할수록 당사자가 그만큼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가 내게 추천해준 건 500만원짜리로,
내 사정을 딱하게 여겨 300만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300만원도 내겐 여전히 큰돈이었다. 내가 망설이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더 저렴한 것도 있지만, 500만원 정도는 하셔야 효과를 보실 거에요. 가격만 보고 저렴한 걸로 선택하셨다 후회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더 구매하셔서, 괜히 추가비용만 더 발생하셨거든요. 그런 일 없도록, 처음부터 제대로 구매하시길 추천드릴게요. 그리고 실제로 10억까지 쓰신 분도 계세요. 그 분 3일만에 과거로 가시더라고요.
과거로 간다는데 돈이 뭐 대수겠어요? 어차피 과거로만 가면 모든 게 초기화돼서, 돈을 아예 안 쓴 셈이 되어버릴 텐데요.
그리고 지금 구매자는 넘치는데, 물품이 많이 부족해요. 아무래도 세계 각지에서 공수해오는데다, 정화작업까지 거쳐야하거든요. 나중에 원하시더라도 아주 오래 기다리셔야 할거예요.
억지로 강요는 안 해요. 선택은 본인 몫이죠. 다만, 대기가 길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려드리는 거에요.
사실 선생님 사연듣고 마음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원래 이 가격에, 이 구성, 말이 안되거든요.“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쩌면 하늘도 내게 가혹한 시련을 겪게한게 미안해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보내준 것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나는 더이상 갈곳도 없었다. 내 방 말고는.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이 방에서, 답 없는 인생에서.
결국 나는 300만원 주고 물품을 구매했고, 그가 보낸 사람에게 수표를 건네주었다. 그 돈은 엄마가 밥 굶지말고, 배달음식이라도 시켜먹으라며 나한테 보내주신 돈이었다.
물품이 든 상자도 그가 보낸 사람을 통해 직접 전달받았다. 설렘을 가득안고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한지, 드림캐쳐, 둥근 녹쇠 그릇, 조약돌 여러개가 들어있었다.
기대보다 훨씬 평범해 보여 살짝 실망했지만, 혹여 찢어지고 부서질 새라 조심조심 꺼냈다.
한지는 꼭 부적만한 크기였는데,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다.
적은지 얼마 안됐는지, 먹물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나는 그가 알려준 대로 그것을 침대 머리맡 위에 붙였다. 그는 수시로 저 부적을 바라보며 문구를 되뇌이라고 했다. 내 에너지를 정화하기 위해서.
드림캐처는 손바닥 만한 크기였는데, 올이 풀려있었다. 그의 지시대로 창문에 매달고, 커텐과 창문을 활짝 열었다. 어둡고 갑갑하던 방안으로 상쾌한 공기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가 말하길 이렇게 하면 드림캐처가 공기와 햇빛을 정화해줄 것이라고 했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조약돌들도 집안 곳곳에 두었다. 이렇게 하면 집안의 기운이 정화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은,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나는 둥근 그릇에 물을 정성스레 가득 채우고, 책상위에 조심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 눈을 감고는, 그가 말한 지시를 하나씩 떠올렸다.
“일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세요.”
“그 다음, 가고 싶은 ‘때’을 떠올리세요.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마치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요.”
“오감으로 느끼세요. 머리로 말고요. 그때 느꼈던 분위기와 감정까지도요.
그곳에 실제로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셔야 해요.”
세 달 동안, 나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저 의식을 반복했다. 전보다 몸은 조금 좋아졌지만,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뉴월드는 내가 수련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더 정진해야 된다는 대답만 내놓았다. 그게 아니라면, 더 비싼 세트를 추가로 구매하라고 했다.
어느 순간, 마음 속 저편에서 의구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마침내 나는 그에게 과거는 됐으니, 돈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내 수련을 탓하며 더 비싼 세트를 구매하라는 똑같은 대답만 반복했다. 급기야 어느 순간부턴 연락도 받지 않았다. 그의 글에 남긴 댓글마저도 삭제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할 생각까지 해봤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다시금 엄습해왔다.
너무 답답한 나는 몇날 며칠을 끙끙 앓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픈 채팅방에 여러 키워드를 넣고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나 같은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을 찾아냈다. 거기엔 나까지 다섯 사람이 모여 있었다.
“저, 여기 혹시 뉴월드라고 아시나요?”
내가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알다마다요. 그 놈한테 뜯긴 돈이 얼마인데요. 사기 당하신 거에요?”
“그거 정말 사기 맞아요? 말도 안돼요. 인증사진도 있던데요?”
“그거 도용이나 포토샵일 거에요. 다들 그거 보고 속은 거에요. 악랄하죠.”
내가 반신반의한 채로 묻자, 누군가 설명했다.
“그럴리가...”
“휴... 처음엔 다들 그 반응이에요. 못 믿죠. 아니, 안 믿고싶어 하죠.”
내가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자, 한명씩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그 사기꾼이 뭐라던가요? 과거로 누구나 갈 수는 있지만, 아무나 갈 수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요?”
“과거로 가려면, 에너지 정화와 주파수 맞추기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도 했죠?
“그러면서 물품 구입하도록 유도하고요. 비쌀수록 과거로 빨리 갈 수 있다면서요.”
“네, 다 맞아요. 어떡하죠. 경찰에 신고는 하셨어요?”
“이미 했죠. 경찰이 말하길, 해외 아이피라 잡기 힘들거래요. 그 사이 저 놈들만 아주 신났죠. 활개치고 다니느라, 새로운 피해자들만 계속 생겨나고.”
마침내 수긍한 내가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비관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저, 그 돈 꼭 받아야 돼요. 그거 제 돈이 아니라 엄마가 주신 돈이거든요. 저 밥 굶지 말라고 주신 건데... 전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요?”
“그놈들이 나쁜거니까 본인 탓하지 말아요. 절박한 사람 마음 이용한게 나쁜거지, 피해자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진실을 마주하자 한탄스럽고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진심어린 위로에도, 눌러뒀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 여지껏 엄마한테 제대로 된 딸 노릇 한번 못해봤어요. 이 나이 먹도록 제 밥벌이도 못하고, 용돈을 드리긴 커녕, 엄마가 힘들게 벌어오신 돈 받기만 했어요. 근데, 이젠 그런 돈을 바보같이 사기나 당하고...”
“에고... 그만큼 과거로 가고싶은 마음이 절실했던 거죠.”
“네, 맞아요. 답 없는 인생, 다 뜯어고치고 싶었어요. 과거로 가는 거 밖에 답이 없겠다 싶었어요.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 다니면서 제 앞가림 하고, 부모님께 꼬박꼬박 용돈 드리며 살고 싶었는데...”
누군가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고, 그렇게 한 사람씩 마음을 열며 자신의 상처를 나누었다.
“에휴, 나도 그 마음 알아요. 난 사업에 실패했거든요. 평생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 일만 죽어라 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네요. 가장 노릇 못하고, 가족들한텐 짐만 되고... 가족들이랑 사이도 서먹서먹해요.
서울까지 올라와서 성공 하나만 보고 달렸는데, 다 부질없네요. 일만 한다고 고향 한번 안 내려가고, 어머니 산소도 못 가봤는데...
앞만 보며 달리느라 행복은 다 놓친 거 같아요.
전 그저 멱이나 감고 아무 걱정 없이 해맑게 뛰놀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어머니가 해주시던 된장국도 그립고...”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평생 가정주부로 살면서 가족들만 보고 헌신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다 부질없고 지쳐버렸어요. 가족들은 저한테 요구하고 화만 냈지 인정해준 적이 한번도 없었거든요. 사이도 갈수록 멀어지기만 하더라고요. 제가 꿈꿨던 가정은 이게 아닌데... 뭘 위해서 이렇게 살았나싶네요.”
“그 마음, 저도 잘 알 것 같아요. 저도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맨날 야근에 휴가까지 미루며 일했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일이 줄지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결국 탈진해서, 처음으로 병가내고 쉬고 있어요.
그리고 아내가 바람이 났어요... 아직 신혼인데... 아내는 지금 그놈이랑 같이 살겠다고 집까지 나갔어요. 대체 제가 뭘 잘못해준건지... 정말 사랑했거든요. 제 첫사랑이었어요.
전 그전으로 돌아가서 아내를 꼭 붙잡고 싶었어요. 이 상황이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었어요...”
“저도 붙잡고 싶은 사람이 있었어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내 인생은 이제 죽는 거 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한탄을 흘리듯 내뱉자, 각자 애써 감춰뒀던 마음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저도요. 이렇게 살아서 뭐하겠어요. 그만 다 내려놓고 싶어요.”
“저도 너무 지쳤어요 이젠.”
“어디든 이 답답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네요.”
“사는 게 싫네요. 세상도, 사람도, 제 자신도요.”
그러다 자연스레 누군가 제안했다.
“...우리, 같이 죽을래요?”
혼자인 줄만 알았던 어른이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다른 어른이들을 만나자 깜짝 놀라면서도 묘하게 안도했어요. 그들도 하나같이, 저마다의 족쇄를 차고 있었죠.
그리고 뜻을 모았어요. 이 헌나라를 떠나, 함께, '죽음나라'로 가기로요.
죽는 건 쉽게 결정했는데, 막상 방법을 정하려니 마땅한게 떠오르지 않았다. 저마다 생각이 너무 달라서,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대화는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그러다 불현듯 무언가 떠오른 내가 궁금증이 생겨 질문을 던졌다.
“혹시, 다들 이루고 싶었던 꿈 있으셨어요? 전 가수 와이낫을 항상 동경했고,와이낫 같은 가수가 돼서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싶었어요.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화려한 조명도 받고, 박수갈채도 받고요.”
그 말이 신호탄이었던 걸까.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전 히말라야 등반이요. 허허.
이런 얘기는 학창시절 이후로 오랜만이네요. 먹고사느라 바빠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서, 만세 한번 힘차게 외치고 싶었어요.”
"전 가족이랑 놀이공원 가는 거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오순도순 사진도 찍고, 회전목마도 타고, 소리도 지르고요."
"저는... 아내랑 전처럼 살고 싶어요. 그냥, 그 사람이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요."
“그저 하루 만이라도 평범하게 살아봤으면 좋겠네요.”
사람들의 허황되고 거창한 것부터 추상적이고 평범한 것까지 다양했다.
“저희, 죽기 전에 버킷리스트 해보는 거 어때요?”
내가 툭, 제안하자,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툭툭, 답이 달렸다.
“그거 괜찮은데요?”
“좋아요.
“어차피 죽을거니까 뭐, 해볼만 한데요.”
“나쁠 건 없네요.”
“혹시, 빨리 가셔야되는 분은 없죠?”
그렇게 우리는 흔쾌히 다같이 죽기로 결심했고, 죽기 전에 먼저 버킷리스트부터 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직접 만나서 세우기로 하고 만날 약속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