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가는 법1

by 이정표

저런 것들은 쫄쫄 굶겨서 내쫓아야 돼. 그래야 정신 차리지 쯧쯧.

부모가 오냐오냐 다 해주니까 저러는 거 아냐. 하여간 부모가 문제라니까.

받아주는데 있음 아무데나 빨리 취업해야지. 언제까지 부모님 등골이나 빼먹으며 살래?


여느 날처럼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한 동영상 속 댓글들이 내 마음을 날카롭게 후벼 팠다. 은둔형 외톨이에 관한 다큐였고, 댓글은 온통 비난으로 가득했다. 캄캄한 방 안 내 손에 쥐어진 핸드폰 화면만 밝게 빛나며 내 심각한 얼굴을 비춰주었다. 나는 속이 쓰라리면서도 왜인지 멈출 수 없어 댓글들을 하나하나 쭉 읽어 내려갔다. 마침내 모든 댓글을 다 읽고 나서야 폰을 던지듯 내려놓고, 똑바로 누운 채 눈을 감았다. 폰 화면의 불빛조차 사라지자 방은 어둠 속에 잠겨버렸다. 방금 읽은 댓글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그 비난은 모두 나를 향한 것이었다. 한 팔을 들어 눈 위에 얹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나도 알아. 나도 이런 내가 싫고 벗어나고 싶어.

근데 이상하게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


취업 안하고 집에서만 지낸지도 벌써 7년째다. 처음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핑계를 댔다. 하지만 애시당초 시험에 붙을 자신도, 사회에 나갈 용기도 없었다. 그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당연히 시험엔 계속 떨어졌고, 해가 거듭될수록 시험마저도 아예 보지 않았다. 나는 점점 내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급기야 가족들을 피해 화장실을 가거나 밥 먹을 때를 제외하면 주로 내방 침대에서만 생활했다. 나는 어느덧 이런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어느덧 방문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리더니 딸깍 스위치 켜는 소리와 함께 방문 틈사이로 환한 빛이 스며들었다. 가족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벌써 저녁이 된 것이다. 외출도 하지 않고 똑같은 날들만 보내다 보니, 시간도 계절도 감각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햇빛이 싫어 암막커튼을 치고 생활하다보니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조차 헷갈렸다. 가끔 창문을 열어볼 때면 계절이 확확 바뀌어 있었다.

가족들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 때가 내가 하루 중 제일 긴장하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 되면 얇은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와 가족들 사이에 아슬아슬한 대치가 벌어졌다.

내가 방문을 걸어닫고 방에서 안 나오기 시작하자 가족들은 처음엔 나를 어떻게든 방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애썼다. 강제로 문을 열려고 까지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 갈등만 깊어질 뿐 아무 소용없다는 걸 깨닫자 이내 체념했다.

그래도 가족들이 돌아오는 이 시간만 되면 괜히 마음 졸이며 숨죽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침조차 삼키기가 조심스러웠다. 여느 때처럼 거실에서 TV소리가 들리더니 도란도란 부모님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방문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갔다. 그리고는 방문에 귀를 대고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가만히 집중했다. 아빠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저대로 내버려 둘 거야?“

"공무원 시험 준비하긴 하는 거야?"

"곧 서른인데 저러다 사십 금방 와."

"우리가 언제까지 일해서 먹여 살릴 순 없잖아."

"애가 저 지경이 될 동안 당신은 대체 뭘 한 거야?"

"저럴 거면 차라리 시집이나 보내버려.“


역시나 내 얘기란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언성이 높아 알아듣기 쉬운 아빠와는 달리, 엄마의 말소리는 낮게 웅얼거려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엄마가 뭐라고 하시는지 알 수 있었다. 나를 대신해 변명하고 있을 게 뻔했다. 엄마는 그렇게 나대신 죄인이 되었다.


핸드폰을 켜서 엄마가 여지껏 보낸 카톡을 살펴보았다. 전부 밥 잘 챙겨먹으라는 말과 냉장고에 있는 반찬 얘기 뿐이였다. 아빠나 언니와 주고받은 카톡은 끊긴 지 오래였지만, 엄마한테서 온 카톡은 불과 어제였다. 그리고 난 아무런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엄마와의 채팅방엔 엄마가 보낸 메시지들만 수북히 쌓여 있었다.


엄마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진 나는, 침대로 돌아가 눕고선 이불을 머리끝까지 폭 뒤집어썼다. 이젠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나 같은 못난 자식 말고 잘난 자식을 두었더라면, 엄마도 지금쯤 호강하고 사셨을 것이다. 적어도 이런 고생은 하지 않으셨겠지. 남들은 다 자기 앞가림 하면서 잘만 사는데, 저 당연한 일이 나한텐 왜 이렇게 어려운걸까. 세상은 왜, 나 같은 사람이 태어나도록 허락한 것일까.

내 인생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후회스런 과거의 기억들이 소용돌이치듯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과거를 바꾸지 않고서야, 내 인생은 아무 답도 없어 보였다. 다시 살수만 있다면, 내가 한 선택들은 죄다 피하고 싶었다. 급기야 인터넷에 과거로 가는 법을 검색해보았다. 2차세계대전 중 비밀리에 이뤄졌다는 시간여행 실험, 시간여행의 증거라며 올라온 사진, 과거에서 왔다는 시간여행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 등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저런 호기심만 자극하고 마는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진짜' 과거로 가는 법이었다. 그러던 중, 한 게시글이 보였다.


과거로 가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저 진짜 장난 아니고요... 정말 절실해요...

제발요... 저 꼭 돌아가야 돼요...

누가 좀 알려주세요 제발...ㅠㅠ


이 글의 조회수는 무려 1만명이었고, 밑에는 개의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현재를 사세요, 과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현재를 잘 사는 게, 과거를 바꾸는 최고의 방법이에요.


현실을 일깨워주는 냉혹한 댓글이 대부분이었지만,

작성자나 나만큼이나 절실한 댓글도 꽤 보였다.


저도요ㅠㅠ

저도 좀 알려주세요ㅜ

제발, 누구 아는 사람 없어요?


거기엔 이런 댓글도 달려 있었다.


어떡해... 나 이 사람들 너무 불쌍해...ㅠㅠ


방공호 속에 갇혀있던 어른이는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다가, 전에 살던 '과거나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해요.

원래 그곳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지만,

혹여나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진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아보고 싶었죠.

어쩌면,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어요.


그러면 그렇지 하고 체념하려던 찰나, 다른 게시글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저는 미래에서 왔습니다.


나는 얼른 클릭하고 들어갔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제가 겪은 이 모든 건 사실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글은 길었지만 나는 단숨에 읽어내려 갔고, 그가 쓴 수십 개나 되는 다른 글들도 홀린 듯 모두 읽었다. 모든 글에는 그가 여태 살아온 삶과 과거로 가서 바뀐 인생이 일관되고 진지하고 적혀있었다. 그는 고단하고 기구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사연은 이랬다. 의지할 사람도, 마음 둘 곳도 없이 떠돌다시피 살았다고 했다. 계속된 실패와 상처로 오랫동안 방황하다 결국 죽음을 결심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단다. 그러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떠난 해외 여행에서 한 은인을 만나게 됐는데, 놀랍게도 그분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도인이었다. 그를 딱하게 여긴 도인은 자신의 제자로 받아주었고, 함께 수련을 하며 심신을 단련하였다고 한다. 그의 실력은 나날이 일취월장 했고, 심지어 가르친 스승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특별한 능력까지 갖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시간여행'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자신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었고, 그동안 겪은 시련은 모두 그 재능이 발현되기 위한 시험이었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저처럼 특별한 사람일수록 삶이 고단합니다. 만약 당신의 삶이 너무 힘들다면 당신도 모르는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을지도 몰라요.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죠.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그는 곧장 과거로 돌아가 후회되는 일들을 모두 바꾸었고, 지금은 아주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통장 잔고와 대기업 사원증을, 개인정보만 살짝 가린 채로 인증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시간여행은 실제로 가능합니다. 누구나 가능한 일이죠. 다만, 저 같은 특별한 사람만이 수련을 통해 직접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반드시 저 같은 이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강조했다.


아무에게나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정말 절실한 사람,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에게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장난이나 호기심으로 접근하셨다간, 하늘이 벌을 내릴 것입니다.


마지막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원래 이런 건 천기누설이라 함부로 발설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예전의 저처럼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을 그냥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걸 알리는 대가로 저의 수명이 줄어든다 해도 말이죠.


아래로 스크롤을 내리자, 수많은 댓글들이 주르르 달려 있었다. 그의 글에 감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자신의 사연을 남긴 댓글도 종종 보였다.

간혹 이런 댓글도 있었다.


ㅋㅋㅋㅋㅋ 이걸 진짜로 믿냐? 그럼 과거로 간 사람들은 왜 안 나타나냐?


하지만 그 밑엔 반박댓글이 여러 개 달려있었다.


과거로 갔는데 여기다 어떻게 댓글을 다냐? 글은 읽어보고 댓글 다는 거냐?

천기누설이래잖아. 누설하면 수명만 줄어들텐데, 너 같으면 올리겠냐?


너가 방구석에서 이렇게 의심하면서 인생 낭비할 동안,

다른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걸?


과연 진짜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지어냈다고 하기엔 너무 정성스러웠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단 해보고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빠져나오면 그만이었다. 작성자의 닉네임인 뉴월드에 눈길이 갔다. 새로운 세상이라, 절망만 가득하던 내 마음에도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에게 쪽지를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거기엔 채팅방 주소 링크가 걸려있었다. 나는 바로 링크를 눌러 채팅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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