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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an 16. 2023

소비단식을 시작해 볼까?

<소비단식일기>를 읽고



밀리의 서재를 한 달 무료로 구독하고 있는데 서박하 작가님의 <소비단식일기>가 눈에 띄었다. 소비에 단식이라는 단어가 붙으니 놀라는 것은 물론이요, 저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고… 2시간 만에 다 읽어버린 나는 결심했다. 소비단식을 한번 해보기로.


소비단식을 하겠다고 제일 처음 선포한 것은 요롱에게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요롱은 지랄하지 말라고 했다. 아마 수급비로 월세, 휴대폰 비, 공과금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없으니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런던 신사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이런 나를 요롱은 더는 말리지 않았다. 그래, 들어 처먹을 것 같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그것은 정답이다. 난 듣지 않았을 거다. 일단 해보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으니까.


나는 빚도 없고 (은행에서도 나라에서도 빚을 내주지 않는다. 당연하다. 백수니까.) 씀씀이도 그다지 헤프지 않지만 (씀씀이가 헤플만큼의 재물이 없다.) 그래도 어디 한번 오징어 국물 짜내듯이 돈을 아껴 써보고 싶었다. 얼마나 아껴야 단 돈 삼만 원이라도 저금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지구와 환경을 위해서라도 소비를 멈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단식이란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 자신에 대한 소비를 일절 끊는 것이다. 생활에 꼭 필요한 생필품만 사고, 경조사비는 아끼지 않되, 나를 위한 사치품은 구매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간단하고 쉬워 보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 보이는 것이 소비단식인 것 같았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어떤 사치를 하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매일 가지는 않지만 한 달에 한두 번 가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설레는 마음으로 사는 책 한 권이 있었다. 혼자 밥 차려 먹기에 실패하여 쓰는 배달음식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친구는 한 명 밖에 없으니 경조사비는 됐고, 커피나 책, 그리고 배달 같은 것들을 다 끊어내야 했다. 커피는 몸에 좋지 않으니까 이번 기회에 끊는 것이 좋겠고,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집에 있는 책들을 읽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달음식은 정말 무조건 끊어야 했다. 소비단식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자마자 당장 배달의 민족 어플부터 지웠다. 어플이 있으면 계속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결국 시켜 먹고 싶어 지게 될 테니까. 나는 음식 앞에선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었으므로.


소비단식을 처음 하겠다고 다짐했을 때 걱정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이렇게 아껴서 모으는 돈이 얼마일까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머릿속으로 괜히 계산기도 두들겨봤다. 생각보다 꽤 되는 금액이 통장에 쌓일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기관지와 관절에 문제가 있어 산책을 금지 당한 까망이 개모차는 여름 안에 무조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이 그곳에까지 미치자 침대 위에 이불을 돌돌 말고 누워 있던 나는 신이 났다. 그래서 침대에서 내려와 까망이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까망이는 갑작스러운 주인의 행동에 영문도 모른 채 깡깡 짖었다.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 없어 강제 소비단식 상태였지만 그래도 일단 당장 소비단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얼마 안 되는 돈으로도 소비단식을 실천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나는 생각보다 편의점에서 파는 제로 콜라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밥을 하기 싫어 집 앞 분식집에서 김밥 두 줄로 저녁을 때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고, 유튜브에서 영업을 당해 책 한 권을 절실히 사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을 때면 괜히 서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다가도 나 자신에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랄하고 있네. 서럽긴 뭐가 서러워. 드라마 속 주인공인 것처럼 굴지 마.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그러면 나를 찾아왔던 자기 연민이 손을 흔들며 떠나가고 나는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어떻게든 소비단식을 이어나가고는 있다. 사실 남아 있던 돈이 후불 교통카드 비용으로 나가는 바람에 정말 돈이 수중에 한 푼도 없어 중간에 당황하긴 했지만, 요롱이 오만 원을 보내주어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한 푼도 없이 소비단식을 하는 것과 단 돈 만 원이라도 가지고 소비단식을 하는 것은 임하는 마음부터가 천지차이다. 그걸 이번에 느꼈다. 땡전 한 푼도 없이 소비단식을 하면 사람이 비참해진다. 그러니 소비단식을 하려는 여러분들은 돈 만 원이라도 꼭꼭 챙겨두시길.


지금까지는 준비 운동이고, 제대로 된 소비단식은 수급비가 들어오는 20일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나는 허리띠를 꽉꽉 졸라매가며 소비단식을 아주 제대로 실천할 거다. 일단 필수로 나갈 돈은 방세와 휴대폰 비 그리고 각종 공과금들이다. 이 외에 생필품비를 제외하고는 절대 쓰지 않을 생각이다.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말한다. 옷은 있는 것을 깨끗하게 세탁하여 다려 입고, 책은 꼭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집에 있는 걸 읽고, 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솜씨지만 그래도 일단은 해 먹어보는 거다.


소비단식일기 작가님께서는 소비단식 기간을 1년으로 잡으셨다. 나도 똑같이 1년으로 잡으려고 한다. 그러면 어느 정도 나의 소비패턴도 제대로 자리 잡혀 있지 않을까? 중간중간 실패할 때도 있고, 그래서 이딴 거 다 때려치워!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 자신과 약속한다.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처음 소비단식을 시작했던 날처럼 설레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나 정말 1년 소비단식 성공할 수 있을지도…? 소비단식에 성공한 나를 상상하니 괜히 헤벌쭉 음흉한 웃음이 나온다. 이런 내가 낯선 까망이는 다시 한번 깡깡 짖는다. 그래도 나는 까망이를 보며 웃는다. 짜샤. 그래도 너 조금 있으면 개모차 탈 수 있어. 누나가 그까짓 거 한 번 태워줄게.


일 년 후, 나는 돈을 얼마나 모았을까. 소비단식에 성공하면 브런치에 다시 한번 이 주제로 글을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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