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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an 13. 2023

혼자 먹는 밥

1인 가구의 식사



밥을 혼자 먹을 때가 많다. 친구가 있으면 친구와 함께 먹지만 거의 혼자 먹는다. 면을 좋아하지 않아서 생활비가 떨어졌을 때 빼고는 라면이나 소면은 먹지 않는다. 라면을 먹을 땐 정말 돈이 없다는 증거다. 생활비가 빠듯할 때 빼고는 거의 밥을 먹는다. 덩치가 꽤 있는 편인데 이 덩치는 다 밥으로 인해 키워진 것이다. 나는 먹는 것 중에서 밥을 가장 좋아한다. 특히 흰쌀밥.


흰쌀밥은 대단하다. 어떤 반찬에든 다 잘 어울린다. 그중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단연 김치찌개라고 생각한다. 푹 익어서 야들야들한 김치에 기름기가 적당히 있는 고기가 있으면 정말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아니면 기름을 쫙 뺀 참치라든지, 손질한 고등어라든지… 김치찌개는 정말 완전한 반찬이다.


언젠가는 식단표를 짜서 하루하루 차려 먹어볼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 김치찌개는 커녕, 거의 3분 카레나 3분 짜장이 주를 이뤘다. 아주 가끔 그나마 할 수 있는 요리인 김치볶음밥, 콩나물국, 계란후라이가 메뉴에 오르기도 했지만 주식은 역시 3분 카레 아니면 스팸이었다. (전 집주인 할머니께서 명절 때면 스팸 선물세트를 꼭 주시곤 했다.)


계속되는 3분 요리의 향연에 나는 결국 백기를 들고 치킨을 시키게 된다. 이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2인 가구에서 갑자기 1인 가구가 되어 밥을 혼자 차려 먹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식단표를 짜고 3분 요리를 먹다가 혼자 폭주하여 배달 음식을 시키고 자괴감에 굴러다니고… 반복되는 이런 한심한 일상 속에서 나를 구해주는 손길이 있었으니, 집에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는 사촌언니(이하 요롱이)였다.


요롱은 내 사촌언니이면서 2015년에 (본인에게만) 자상한 남편과 결혼해 귀여운 딸 하나를 낳고 사는 기혼 여성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할머니와 나에게 금전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아빠라는 사람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을 때도 요롱은 자신이 사는 집에 나를 몇 달이나 숨겨주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다. 결혼을 해서도 요롱은 나를 가끔 집으로 불러 꼭 아침밥을 먹이고 저녁밥으로 먹을 반찬을 싸주곤 했다. 그런 요롱 덕분에 나는 1인 가구로서 어찌어찌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의미로 나의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요롱은 콩나물국을 잘 끓였다. 내가 끓이면 이상하게 요롱이 끓인 것 같은 깊은 맛이 나지 않았다. 나이롱 같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요롱은 된장찌개도 잘 끓였고 김치볶음밥도 잘 만들었고 고기 요리도 잘했고 밑반찬도 잘 만들었다. 요롱의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을 때면 항상 요롱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요롱은 항상 대수롭지 않게 먹어라. 하면서 나에게 밥그릇을 건네주었다. 그럼 나는 황송해하며 우걱우걱 먹었다. 그렇게 먹는 밥은 실로 맛있었다.


요롱이 저녁밥반찬으로 싸주는 음식들은 그야말로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쩔 때는 생김치이기도 했고, 밀가루를 묻힌 가자미이기도 했고, 해동된 고등어이기도 했고, 고기 주물럭이기도 했다. 장조림이나 진미채 같은 밑반찬을 주기도 했는데 날생선 같은 기묘한 찬거리를 줄 때면 나는 집에 가는 내내 계속 웃었다. 괜히 웃겼다. ‘가서 먹어라.’ 하며 싸준 요롱의 엉뚱함이 그냥 웃겼다.


결과적으로 요롱이 싸주는 것들은 아주 잘 먹었다. 어쩔 때는 푸짐하게 싸줘서 친구를 불러 같이 먹을 때도 있었고, 나 혼자 야금야금 먹을 때도 있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로서 공짜로 들어오는 찬거리들은 정말 귀했다. 지금도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는데 아마 요롱이 이 사실을 알면 욕을 한 바가지 하며 뒤로 넘어갈 것이 분명하다. 요롱은 항상 ‘집에서 밥 해 먹어. 안 그러면 잔병치레 많아진다.’라고 말하고는 했으니까.


할머니가 살아있을 때, 항상 저녁 반찬을 고민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주로 계란을 풀어 그 안에 대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는 계란 부침을 자주 만들었는데 나는 세상에서 파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므로 잘 먹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쯧쯧 혀를 찼지만 파만 보면 헛구역질이 나오는 건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빠와 고모들은 할머니가 만든 반찬을 잘 먹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할머니는 음식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대파 넣은 계란부침만 빼면 할머니가 해준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해주는 대로 열심히 먹었다. 지금도 가장 먹고 싶은 것을 꼽으라면 할머니가 해준 김치찌개를 제일 먼저 말할 수 있다.


요즘은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 오늘 저녁으로는 떡라면을 먹었다. 수급비가 나오는 날까지 허리띠를 졸라맬 시기이기 때문이다. 라면 국물을 머금어 푹 퍼진 떡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면서 내일은 또 뭘 먹지 생각했다. 내일은 아무래도 3분 카레를 먹지 않을까. 그래도 조금 사치를 부려본다고 계란후라이를 두 개 정도 올릴 수도 있다. 내가 3분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참 다행이다. 싶다.


내가 이렇게 부실하게 차려 먹는 이유 중 하나는 혼자 장을 보는 방법을 모른다. 장을 본다고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내 장바구니 안엔 냉동식품이나 가공 식품들이 가득 쌓여 있다. 어쩌다가 가끔 반찬 코너에 가서 3팩에 만 원 하는 것들을 사기도 하지만 거의 집는 것들은 꽝꽝 얼은 만두나 꼬마 돈가스 같은 것들 뿐이다.


수급비를 받고 나면 장을 봐야 할 텐데 이번에는 이것저것 정보들을 잘 찾아볼까 생각 중이다. 장을 보는 건 정말 어렵다. 하루 치를 봐야 하는지, 일주일 치를 봐야 하는지, 한 달치를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날것의 식료품들을 사서 어떻게 반찬으로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다. 그래서 항상 잡는 건 3분 요리고, 냉동식품이고, 빵 같은 것들이다.


그래도 모든 것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워가는 것이니까 일단 부딪혀보기로 한다. 잘 안 되면 요롱에게 SOS를 칠 예정이다. 그전에 일단 유튜브로 간단한 반찬 만들기 영상들을 보며 레시피를 메모장에 적을 거다. 그리고는 마트로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 용감하게 나만의 반찬을 한번 만들어볼 것이다. 맛이 없다면? 맛이 없는 대로 먹어야겠지, 뭐…….


혼자 먹고살기 힘들다.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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