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나는, 요 며칠 울증에 시달렸다. 조증도 그렇지만 울증은 항상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오고는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행복하지가 않았다. 일단 일어나는 것부터가 너무 싫었다. 이불 밖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당장 일어나서 방을 치우고 씻고 글을 써야 하는데 그 과정들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그래서 이불을 턱 끝까지 올려 덮고 멀뚱멀뚱 천장만 올려다봤다. 그러자 짜증이 확 치밀었다. 그래서 이불속에서 몸부림을 치며 발버둥을 쳤다. 까망이는 짖고 나는 울고. 엄청난 아침이었다.
보통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업로드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것부터가 불가능했다. 나는 행복해야 글을 쓰는 사람인데 행복하지 않으니 당연히 글도 써지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송장처럼 누워만 있었다. 이런 나 자신에게 짜증이 치밀었다. 그냥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 증발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채로 그렇게. 그러다 보니 또 청승맞게 눈물이 나왔다. 화를 어떻게 주체할 수 없어 터진 눈물이었다. 울증은 사람 마음을 이토록 괴롭게 만들고는 했다.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일어나서 겨우 약을 먹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번엔 수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한 생각은 더는 가난을 팔아서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내 글이 궁핍함과 자기 연민으로 가득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헛웃음이 나왔다. 밑도 끝도 없는 자기혐오가 시작된 것이다. 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가량 있는 대로 없는 대로 자기혐오를 하고 나니 또 비참해졌다. 그래서 엉엉 울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지. 왜 이렇게 한심하지. 주먹으로 내 머리를 깡깡 내려치기도 했다.
머리가 아프니 그만 울고 싶어졌다. 그래서 밥을 먹었다. 밥에선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냥 김치가 맵고 햄이 짰다. 밥 반 공기를 겨우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씻으러 들어갔는데 또 세면대를 붙잡고 울었다.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살겠다고 밥을 먹는 행위가 가증스러웠다. 힘들다면서 밥이나 차려 먹고. 더 생산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주제에. 그렇게 악을 쓰며 울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초췌해서 씻기 시작했다. 씻고 나오니 마음이 한결 나아져서 한번 슬쩍 웃었다.
내 이 약해빠진 마음을 어떻게 단련해야 할까. 병원을 가야 할까. 병원 가야겠지.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무슨 오기 때문인지 병원에는 곧 죽어도 가기 싫었다. 약을 한 포 더 입에 때려 넣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여전히 행복하지 않으니 글은 써지지 않았고 그저 노트북 화면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이 불구덩이 같은 지옥에서 빠져나오려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뭐지? 그랬더니 바로 떠올랐던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나는 책을 좋아했다. 읽는 것도 좋아했고 사는 것도 좋아했고 책 속의 구절을 필사하는 것도 좋아했다. 책 자체를 온 마음 다해 좋아했다. 그걸 깨닫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겨진 옷을 대충 입고 백팩을 메고 마스크를 썼다. 책이 좋으니까, 책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도서관까지는 걸어서 1시간이다. 도서관까지 가는 버스도 없어 무조건 걸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또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가 말했다더라. 걷기는 기도 같은 거라고. 나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을 걸으면서 기도를 하고 또 했다. 제발 내가 다시 행복해지기를 바랐고, 더는 등신 같이 울지 않기를 바랐고, 그래서 생활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있는 신 없는 신 끌어모아 빌었더니 어느새 도서관에 도착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에 살짝 들뜬상태로 안으로 들어섰다.
결론만 말하자면 도서관 안에 내가 원하는 책은 없었다. 그래도 책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만져보고 앞부분을 읽어보는 행위에서 나는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랬더니 기분이 괜찮아지고 더는 울화가 치밀지 않게 되었다. 눈물도 안 났고 악을 쓰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책이 나에게 주는 엄청난 선물이었다.
책장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최대한 많은 책들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두 시간 뒤 나는 책을 한 권도 빌리지 않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마음은 즐거웠다.
이런 날도 있는 거였다. 책을 빌리고 싶지 않은 날도 있는 거였다. 기분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날도 있지만 나쁜 날도 있는 거였다. 기분이 나빠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는 거였다. 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는 거였다.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서, 울증에 빠져 슬픔의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고 해서 나는 한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 그런 날이 있는 건데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나도 엄격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많은 책들을 만나고 온 지금의 나는 꽤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울증이 싹 가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정신은 차릴 수 있게 되었다. 기분이 뒤죽박죽인 상태에서 쓴 글이라 내가 무슨 글을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 정신병이 남긴 기록 중 하나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읽어주시는 분들께서도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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