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혼자 보낸다는 것
얼마 전 설날이었다. 혼자 지내는 휴일이기도 했다. 일단 명절이니 떡만둣국을 끓여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 놓았다. 제사랍시고 물 한 그릇도 떠놓지 말라는 할머니였는데 그래도 할머니한테 조촐하게나마 한 상을 차려주고 싶었다. 올리고 남은 것은 내가 먹었다. 할머니와 함께 먹는 기분을 내고 싶어 할머니 상에 내 상을 붙이고 앉아 영정사진과 마주 보며 먹었다. 이 짓도 이제 3년이 되어가니 슬프지도 않았다.
혼자 보내는 명절은 별게 없어 보이지만 생각보다 더 별게 없었다. 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 나라서 명절 특집 프로그램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었고, 돈도 아끼는 중이라서 어딜 나갈 수도 없었다. 그저 침대 위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둘 중 하나였다. 유튜브를 보다가 배가 고프면 시리얼을 먹었고, 책을 읽다가 몸이 찌뿌둥하면 괜히 집 안을 까망이와 함께 돌아다니거나 밖에 나가 30분 정도를 걸었다.
사실 명절이고 휴일이라고 해서 보통날과 다른 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백수다. 백수에게 휴일이 달콤할 리가 없다. 그저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요즘엔 가게들도 명절 당일 빼고는 쉬는 날이 거의 없어서 더 그랬다. 장을 보러 나가거나 산책을 할 때에도 명절 같은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날 중 하나로만 느껴졌다. 명절을 홀로 보낸다는 건 이렇게 뭐가 없는 건가 싶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일요일이 4번인 느낌. 뭐 그 정도.
그래도 가족이 없으니 복작복작함을 느끼지 못해서 살짝 외롭기도 했다. 명절 때마다 부치는 전도 부쳐서 먹고 싶었고, 사람들이랑 떠들고 싶기도 했고, 멀리 있는 시골에 가고 싶기도 했는데 나는 이것들이 다 불가능했다. 전은 혼자 사서 먹기에는 너무 비쌌고 (금값이다. 진짜로.) 사람들이랑 떠들기는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안 되었고, 멀리 있는 시골은 존재 자체를 하지 않아서 가질 못했다.
그래도 휴일 동안 한 일을 나열해 보자면 키우고 있는 선인장(조이)에게 물을 줬고, 쌓여 있던 쓰레기들을 다 분리수거해서 버려치웠고, 괜히 설날이니 살이나 빼보겠다면서 태보 다이어트 비디오를 따라 하다가 그대로 드러누워 4시간 낮잠을 잤다. 일어나서는 먹다 남은 떡만둣국을 먹었고, 아주 오랜만에 제로콜라를 마셨고 누구보다 행복해했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추위를 이기고 새벽 산책을 나간 적도 있었고, 그런 와중에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사고 싶어 편의점 주변만 30분 빙빙 돈 날도 있었다. 결국 간식거리는 사지 않았다. 대신 명절이니만큼 꽤 괜찮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나왔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더 이런 명절과 휴일을 보내게 될까? 결혼은 포기했으니 아마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까지는 이렇게 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더니 갑자기 늙는 게 무서워지면서, 명절과 휴일에 대한 감사가 솟아 나왔다. 나는 앞으로도 평생 돈 없어도 평온한 휴일을 보내고 싶은데 거동이 불가능해지면 이 모든 게 불가능해지니 말이다. 지금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가 정말이지 마음속에서 퐁퐁 쏟아져 나왔다.
이제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휴일이니 무언가를 하고 싶어 책을 펼쳤다. 책도 나중에 늙어 눈이 나빠지면 더는 읽지 못할 테니 읽을 수 있을 때 많이 읽어둬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강아지 자면서 코 고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방에 목석 같이 앉아 책장을 하나둘씩 넘겨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책 한 권을 읽을 동안 해는 저물었고 나는 만족했다.
아무 걱정 없이 쉬는 날에 대한 감사를 깨달은 나는, 앞으로도 나는 이런 명절과 휴일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내게 와준 고요하고도 평온한 휴일에 감사하면서 나에게 필요한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겠지. 다만 앞으로 명절에 먹을 떡만둣국은 좀 더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다시다만 엄청 넣었더니 간은 맞지만 느끼한 떡만둣국이 완성되었다. 이것도 이제 3년 먹었더니 슬슬 질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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