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진 Jan 27. 2023

말랭이 구출 작전

보호소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다




솔직하게 말할 것이 있다. 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있다. 까망이만 있는 것 같았겠지만 사실은 한 마리가 더 있다. 이 에피소드를 쓰기 위해 꽁꽁 숨겨 놓았던 거다. 연한 갈색 털이 듬성듬성 섞여 있는 하얀색 말티즈. 이름은 말랭이다.


평소 <포인핸드>라는 유기동물 어플을 자주 들여다보는 나는, 어느 날도 내 지역에 유기된 유기동물들을 쭉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나 같이 다 주인이 일부러 버린 아이들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버려진 아이들을 안타까워만 하고 그냥 어플을 껐을 테지만, 그날따라 눈에 밟히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하얀 수컷 말티즈였다. 그 아이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던 나는 요롱에게 사진을 보내며 이 아이를 구조해야겠다고 말했다. 요롱도 흔쾌히 찬성했다. 아무래도 요롱도 길에 버려진 암컷 말티즈 밍밍을 오랜 시간 키웠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여담이지만 밍밍은 노환으로 몇 년 전 세상을 떴다.)


요롱에게 연락을 마친 뒤, 바로 시보호소에 전화하여 이 수컷 말티즈를 입양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니 시보호소에서는 흔쾌히 다음날 오후 12시까지 데리러 오라고 했다. 허락을 받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화를 끊고 강아지를 데리러 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죄다 구입하고선 내일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내일이 되어 찾아갔을 때 내가 어플에서 보았던 강아지는 이미 전날 오후에 입양을 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모든 준비를 다 해놨는데. 이름도 미리 말랭이라고 지어놨는데. 이미 입양을 갔다니. 입만 뻐끔거릴 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랬더니 안경을 쓴 키 큰 남자 직원이 나와 같이 당황한 눈초리로 다른 아이들을 보시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멀리까지 온 이상 한 마리라도 구출해서 데려간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말티즈 위주로 강아지들을 보여주었다. 나도 딱히 강아지를 골라서 갈 생각은 없었으므로 보여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때 엄청나게 불안에 떨며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하는 강아지가 내 눈앞으로 왔다. 나는 단박에 얘로 할게요!라고 소리쳤다. 소리가 너무 컸는지 다른 유기동물들을 옮기던 소장님까지도 나를 뒤돌아 쳐다보았다. 쳐다보든 말든 나는 관심 없었다. 오로지 눈앞에 있는 이 아이를 구조하여 집으로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강아지를 선택하자 (선택한다는 말이 너무 죄책감이 든다.) 입양은 일사천리였다. 서약서 같은 것을 한 장 쓰고, 강아지와 사진을 한 장 찍고, 들고 온 새 가방 안에 강아지를 넣었다. 그리고 올 때는 택시를 타고 데리고 왔다. (보호소에 있었어서 그런지 악취가 엄청났다.) 집에 돌아와서는 말끔히 목욕을 시키고 집안을 돌아다니게 두었다. 말랭이는 다행히도 첫날부터 집에 적응을 아주 잘했다.


그리하여 말랭이는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서 함께 잘 살고 있다. 엄청 불안해하며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했던 말랭이는 집에 오자마자 애교쟁이가 되어 방바닥에 뒹굴고 밥도 열심히 먹고 손을 달라고 하면 손도 주고 너무 기분이 좋으면 점프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애교쟁이 강아지가 주인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말랭이는 이사 때문에 요롱의 집에 한번 까망이와 함께 맡겨진 적이 있었는데 그땐 나보다 요롱을 더 주인처럼 따라서 씁쓸하기도 했다. 전 주인이 아무래도 요롱 또래의 여자인 것 같았다. 주택인 우리 집에서는 응가와 쉬야를 제대로 가리지 못했는데, 요롱의 집에 가서는 작은 방 화장실에 제대로 가렸던 것을 보니 아파트에서 살았던 강아지인 것 같기도 했다.


말랭이가 집에 오고 까망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랭이의 활기찬 성격 때문인지 까망이가 그렇게 까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하기도 했다. 둘이 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친하게 붙어 있지도 않고 적절한 선을 지켜가며 생활하고 있다. 서로의 밥은 서로의 밥그릇에 있는 것만 먹고, 말랭이도 할아버지인 까망이를 건드리지 않으며 까망이도 가끔 너무 활기가 돌아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말랭이를 보며 짖지 않는다. 강아지들이더라도 서로의 모습을 존중해주고 있는 것이다.


말랭이의 사료 값과 간식 값 그리고 패드나 기타 등등의 돈들은 알아서 잘 충당하고 있으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지자체에서도 말랭이가 병원에 갈 경우에는 어느 정도 돈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개 두 마리를 키우면서도 어떻게 어떻게 잘 먹고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외롭지 않고 더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기도 한다.


가끔 내가 데리고 오려고 했던 원래 말랭이가 잘 크고 있는지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포인핸드 어플에 들어가 그 친구의 입양공고를 찾아보았는데, 입양 갔다는 표시 대신 죽었다는 국화꽃 모양의 동그라미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터치했더니 내가 데려가기 전 먼저 데려갔던 주인이 강아지가 기침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심부름 업체 사람을 시켜 파양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선 시보호소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거였다.


어이가 없었다. 지금 데리고 온 말랭이도 말랭이지만 이 죽은 말랭이의 견생이 너무 애잔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데리고 왔다면 그렇게 죽진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입양은 항상 신중하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드디어 주인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배신을 당하다니. 이 소식을 알게 된 후 지금의 말랭이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갑자기 울고 싶어 진다. 털이 박박 깎인 채로 기침을 하며 죽어간 또 다른 말랭이가 생각이 나서.


비참하게 죽어간 말랭이의 몫까지 지금 내 곁에 있는 말랭이가 건강하게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지금의 말랭이를 죽은 말랭이를 키우는 몫까지 정말 열심히 키울 작정이다. 결혼은 포기했으니 까망이와 말랭이가 내 아이들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나에게 맡겨진 생명들을 어떻게든 잘 키워낼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이 글을 끝내면 말랭이에게 북어 간식을 줄 생각이다. 오늘 글의 주인공이 되어줬으니 주는 출연료 같은 것이다. 말랭이에게 말린 북어를 주면서, 까망이에게 불린 북어를 잘라주면서 어쩌면 구원받은 건 얘네가 아니라 나일 지도 모른다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지금 말랭이의 포인핸드 공고 사진.

이때보다 많이 예뻐졌죠?

이전 11화 1인 가구의 명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