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벽》의 주인공 생쥐는 벽이 오히려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는 고양이, 벽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곰 할아버지, 벽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행복하게 사는 여우, 으르렁 소리를 잃어버린 채 벽 너머 세상을 부정하는 우울한 사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생쥐는 벽이 언제부터 왜 생겼는지 벽 너머의 세상은 어떤지가 궁금합니다. 생쥐는 동물 친구들에게 벽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탐색하며 벽 너머의 세상을 꿈꾸다가, 어느 날 파랑새를 만나 벽 너머로 향합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벽을 본 친구들과 달리, 호기심을 갖고 용기를 내 모험을 떠난 생쥐는 결국 벽 너머에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납니다.
벽은 세상의 규칙들, 우리 사회의 모든 금기사항이나 고정관념, 나와 남을 해치지 않는데도 하면 안 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벽을 넘는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안 돼”와 싸우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파랑새의 말처럼, 우리가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 놓는다면, 그 벽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우리는 더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많은 것들이 과거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여성이 바지를 입고, 남성과 평등하게 교육을 받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 남자가 전업주부가 되어 집안일을 하고 육아휴직을 하는 것. 양반과 평민이 결혼하는 것이 불가능한 세상도 있었으니까요. 과거에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 현재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고,자연스러운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인류가 끊임없이 기존에 있던 단단하고 견고한 세상의 규칙과 선을 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도전적인 인간들의 끊임없는 벽 넘기에 대한 이야기 아닐까요?
그림책에서 생쥐를 벽 너머의 세상으로 데려간 파랑새는 말합니다.
“꼬마 생쥐야, 네 인생에는 수많은 벽이 있을 거야.
어떤 벽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지만 대부분은 네 스스로 만들게 돼.”
파랑새의 말처럼 내 앞에 있던 벽들은 누군가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기보다, 나 스스로가 세워 놓은 것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모험을 하고 도전하고 싶어 하는 나를, 주저앉혔던 것은, 세상이나 타인이 아닌, 오히려 나였던 거죠. 샤노 요코의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의 주인공처럼, 하지만 하지만 하면서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나였습니다.
파랑새가 “벽은 처음부터 없었어”라고 말한 것처럼 대부분 내 앞에 있던 벽은 있지도 않은 벽이었고 내가 만든 벽이었습니다. 나는 여자라서, 엄마라서, 며느리라서,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나이가 많아서라는 벽을 세우며 내가 먼저 나를 포기시켰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벽을 넘지 못한 이유는 “난 안 돼”와의 싸움에서 쉽게 져버린 나 자신 때문이란 생각을했습니다.
세상이 만든 벽이든, 내가 만든 벽이든, 그 벽을 넘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으로 종결되고, 그림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나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때때로 나는 벽 바깥쪽은 위험하다며 벽을 오히려 고맙게 여기는 고양이였고,벽이 있는 삶에 순응한 곰이었다가,벽 안에서의 삶이 더 행복하다는 주문을 외무며 살아가는 여우였습니다. 그리고 아주아주 드물게 내 안의 욕망을 따라 벽을 넘어서는 생쥐인 순간도 있었습니다.
“빨간 벽은 항상 그곳에 있었어요.”
세상에는 여기저기에 빨간벽이 항상 있지만, 그 벽을 용기를 내 넘기 시작하면, 그 벽은 더 이상 벽이 될 수 없습니다. 벽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요.
그림책 《빨간벽》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험과 더 넓은 가능성을 향한 도전을 응원하는 책입니다. 사회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기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고 지나친 자기 검열만 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