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야자시간에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는 문장을 머릿속에서 노려봤던 기억이 난다. 문장 앞에 '잘'이라는 부사를 붙이면 조금 더 심각하게 들리는데, '잘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는 확실히 노력과 능력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그어주는 것으로 들렸다. 아마도 매월 보는 모의고사날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내가 과연 이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진로가 나에게 맞을까?'보다 조금 더 단순한 차원의 고민을 했다고 생각했다. 왜 영어 단어를 외우면 지문을 해석할 수 있는데 수학공식은 외워도 답을 구하기 위한 방정식을 세울 수 없을까. 그때의 나는 나이답게 낙천적이며 낙관적이었기에 노력하면 얻어지는 게 능력이라고 믿었다. 노력을 더 해야 수학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문장은 의심할 여지없는 참인 명제였다.
근데 뭘 어떻게 더 노력해야 될까. 다른 과목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조한 수학 점수 때문에 이미 과외도 하고 있었다. 아니 진짜 어쩌라는 거지, 답답한 마음에 눈물을 찔끔댔다. 그랬어도 '왜 난 지금 당장 수학문제를 풀 능력이 없을까'라고 생각했지, '난 아마 수학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인가 봐'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면 된다'는 믿음은 앞으로 내가 할 노력에 대한 믿음이었을까? 능력은 노력하면 생긴다는 명제에 대한 확신이었을까? 어찌 됐든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단순하고도 어찌 보면 무식한 방법으로 노력했다. 그때 나는 매일 자율학습한 시간을 기록하곤 했는데 정말 단순하게 수학공부한 시간이 하루 공부시간 중 가장 길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지금 생각하기에도 일차원적인 노력이었는데, 가장 필요한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모든 과목은 다 재미없고 그냥 해야 하니까 한다. 그래도 공부시간을 기록해 놓은 걸 보면,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을 조금이라도 더 했던 게 보였다. 학문에 대한 흥미가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한 공부를 하다 보니 학생으로서의 효용감은 문제를 맞힐 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문제를 많이 맞히고 문제집을 빨리 끝낼 수 있는 과목에만 손이 간다. 그때부터 수학문제집과의 1대 1 맞짱이 시작됐는데, 문제를 많이 맞힐 수가 없으니까(능력이 없음) 단순하게 문제랑 기싸움하는 시간이라도 늘려보자(노력)는 취지였다.
그 기싸움은 지난하고도 비효율적이었는데 음악가의 악상이나 안무가의 동작처럼 문제 풀이과정이 번뜩 떠오른 적은 정말이지 한 번도 없다. 문제를 째려보는 것으로 창의적인 풀이가 한 문제라도 가능했다면 진작에 흥미를 느꼈겠지. 단순한 시간투자와 함께 단순한 반복동작 연습도 함께 해야 했다. 스스로의 사고과정으로 식을 세워 풀이를 할 수 없다면 될 수 있는 한 많은 풀이과정을 그냥 외워보는 것이다.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도 4년마다 한 번 열리는 대회를 위해 반복연습을 할 테니 '몸이 기억한다' 전략은 검증된 전략이다. 내게도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한다. 문제를 읽고 뭐라도 떠오르지 않으면 답지를 외워서 푸는 걸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수학 답 외우기에 썼다. 한동안 그랬다. 어제 본 문제의 풀이과정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또 답지를 보고 외워서 푼다. 이게 맞나 싶었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게 맞는 방식의 노력이었는지 모르겠다.
수능 실전에서 평소에 잘하던 과목들보다 수리점수가 더 잘 나왔다. 그때 그 전략은 점수에 한해서 아주 유효했다. 그렇지만 그 노력으로 내 수학적 능력이 향상됐다고는 할 수 있을까? 수능 문제로 다른 문제들이 출제됐다면 또 모를 일이다. 노력을 통해 능력을 만들 수 있다는 명제는 과연 참일까? 냉정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암기력이라는 능력으로 수학적 사고와 해석을 할 줄 아는 친구들의 능력을 비슷하게 커버한 게 아닐까 싶다.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은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하고 싶은 일은 다르다.'라는 말보다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다르다.'가 훨씬 두렵게 들린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기에 잘 하든 못 하든 일단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사진을 잘 찍든 못 찍든 그걸 한다고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 사람들은 모두 잘할 수 없는 걸 알아도 하고 싶으면 한다. 더 잘하고 싶어서 노력도 한다. 능력치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노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랑 할 수 있는 일은 달라.'라는 말을 들으면 능력의 한계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재미로 하는 일 말고 커리어로 하는 일을 떠올리게 되고, 나이가 들수록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치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외우는 건 하면 되는데, 수학 식 세우는 건 해봐도 안 됐던 것에 대한 고민은 지금 생각하면 단순한 차원의 고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는 전문가를 존경하며 동경한다. 그들은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일치한다고, 스스로 생각할까? 만약 그렇다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아니라면 재능과 노력의 견인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젠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게 될 일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생각은 각자 다를 수 있어도 확실히 그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오직 재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있을까.
노력하는 재능은 나도 있다. 해봐서 안다. 그러니 내가 잘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의 일치여부에 대해 조금은 더 판단을 유보해 본다. 이것이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인지. 내일은 되겠지 오늘은, 일단 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