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하면 진짜 가만 안 둔다, 고 해도 나도 모르게 또 하게 되는 게 습관의 위력이다.
심지어 해놓고 한 줄 모를 때도 많다. 나중에 모니터링을 하다가 발견해 낸다. 말할 때의 습관은 진짜 정말 고치기 어렵다. 그 습관이 말을 시작하게 하는 추동력일 때도 있고, 말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일 때가 많다. 나의 경우 방송을 시작하고 두 세 마디 안에 '사실,,'이 자주 튀어나왔다. 안 써도 의미에 전혀 지장이 없는데 그냥 갖다 붙이는 습관이다. '사실 요즘 날이 너무 덥다고' 하나, '요즘 날이 너무 덥다'라고 하나 듣는 사람은 별 생각이 없을 수 있지만, 저런 사족이 모이고 모이면 방송을 뻔하게 때론 지저분하게 만든다.
말은 누구나 한다. 그래서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한 기준도 저절로 높아진다. 나도 큰 노력 없이 할 수 있는 게 말이니까 적어도 나보다 유수하게 들려야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말을 일로 삼는 사람은 그래서 더, 압도적으로 잘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용도, 표현도, 소리나, 발음도 여간 갈고닦은 게 아니라는 인상을 줄 때까지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작은 습관도 금방 고쳐지지 않을 때면 아득하다. 멀었다.
방송현장이나 스피치 컨설팅에 가면 다양한 '말 고질병'의 사례를 볼 수 있다. 몸을 흔들지 않으면 말을 시작하지 못하는 분도 있다. 꽤 심각하게 들리지만, 일상에서는 그냥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말을 하면 된다. 대화하는 상대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근데 네모난 화면 안에 클로즈업으로 그 사람만 가득 차면 정말 거슬린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적어도 15분 이상 발표자 혼자 주목받으며 말을 이어가는데 몸을 흔들거리면 내용에 집중이 안 될뿐더러 보는 사람은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처방은 단순하다. '몸을 흔들지 말고 말을 해보자.' 처음 한 두 마디를 뱉을 땐 몸을 흔들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듯 하지만 금세 몸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몸을 묶어본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이때 많은 사람이 자신의 말 습관이 내린 뿌리의 견고함에 몹시 충격을 받는다. 버퍼링이 걸린 영상처럼 한 마디를 끝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말을 잘하는 게 이렇게나 어렵구나, 말 습관을 고치는 건 어쩌면 중대사안일 수 있겠다.
나의 경우 다소 원시적인 방법으로 고치려는 노력을 했다. 방송을 마치고 영상을 확인할 때 과거의 내 입에서 '사실..'이 나올 때마다 입을 한 대씩 쳤(..)다. 스스로 내려치는 회초리에 더해 셀프 각성을 몇 차례하고 나니 방송을 하고 있을 때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아 방금 또 했네.'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됐다. 같이 방송을 하는 동료에게 또 그러면 하자마자 다리를 건드려달라고 부탁해보기도 했다. 아직 완전히 고쳐지지 않았을 수 있지만 '그 말을 하지 않고 말을 해본다.'를 반복하다 보면 '그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을 할 수 있다.'가 된다. 짝다리를 짚는 습관, 머리를 만지는 습관, 어깨가 비스듬하게 기우는 습관, 어... 를 안 하면 말을 못 하는 습관 등 모든 말 습관은 천천히라도 반드시 나아진다.
한 번만 더 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고 다짐하면 결국 손에 장을 지지게 될 것이다. 거의 확실하다. 술이나 담배를 끊는 것과 다르게 말 습관은 의지의 영역보다 무의식의 영역에 가깝다. 안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모르게 했다. 고쳐졌다고 생각할 때 또다시 튀어나온다. 경계심을 오래 유지하면서 꾸준하게 해서, 새로운 습관으로 덮어야 한다.
아직 채워갈 부분이 많다고 느낀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연료가 된다면 정말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되겠지 오늘은, 일단 말 습관 고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