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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이 Aug 04. 2024

1인 비행기


 잠이 안 와 밤이 길어지는 날, 가끔 비행기 이착륙 영상을 본다. 몸통에 깁스를 두른 것 같이 둔한 새가 짧고 뻣뻣한 날개를 단 채 떠오르고 내려앉는 영상은 생각보다 중독성 있다. 길게 펼쳐진 활주로를 맹렬하게 달리던 새의 앞바퀴가 어느 순간 슬쩍 들리는데, 눈 깜빡하면 금세 낮은 고도의 일직선으로 날아올라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


 비행기는 언제부터 '나는(flying)' 상태일까? 비행기 안에 타고 있을 때는 어떤 지점에서 한순간 몸이 붕 뜨는 게 느껴져서 '달리고 있다/ 날고 있다'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깥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럴 수 없다. 앞바퀴가 땅에서 떨어질 때, 바퀴가 땅을 수직으로 박차고 탕! 떠오르는 게 아니라, 땅을 구르다 스리슬쩍 어느샌가 낮은 공중으로 들려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앞바퀴가 떠오르고 나서도 뒤에선 여전히 땅을 달리고 있는 바퀴들이 있다. 물론 이내 바퀴들은 모두 땅에서 멀어져 공중에 붕 뜬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날아오르는 건 구분동작이 아니라 연속동작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일인가 보다. 공학적 지식이 없으니 모르긴 몰라도, 굉음을 내며 거세게 달려야 겨우 살짝 바퀴를 띄울 수 있고, 그리고서도 조금 더 길굴러야 낮게 떠오르는 이륙 영상을 보고 있자면 중력을 거스르고 '나는' 것은 정말 신비로운 과정이다.


 꿈이나 도전, 성취에 대해 비유할 때 비행과 관련한 표현을 많이 쓴다. 비상, 날아오르다, 힘찬 도약. 나만해도 수년 전 직업 관련 인터뷰에서 '본인의 인생이 비행기 타고 가는 여행의 과정이라면 지금 어떤 단계라고 생각하사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캐리어를 싣고 있는 중이라고 했나, 이륙 중이라고 했던가. 아직 본격적으로 성취나 성과가 있을 만큼 일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게 답했었다. 그때의 나는 이륙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당연히 비행기 이륙 영상은 본 적도 없었다. 합격해서 일을 시작했으니 그게 도약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티켓팅을 한 정도밖에는 안 됐던 것 같다.


 만약 파일럿에게 질문을 한다면 이륙의 과정을 연속동작이 아니라 구분동작이라고, 그것도 명확히 구분되는 단계의 지속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타고 있는 승객은 '달린다/떴다' 밖에 느낄 수 없고, 바깥의 누군가는 그것보다 조금 더 상세하게 바퀴가 들리는 순서 눈으로 확인해 '날아오르는' 걸 보겠지만 실제로 비행기를 띄우는 조종사의 과정은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어쩌면 세기 힘들 정도의 매뉴얼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해진 순서대로 이행하고 나서야 겨우 힘차게 달리기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종사에게는 이륙하기 위한 수많은 과정 중 어떤 순간이 '도약'이고 언제부터 '나는'건지 궁금하다. 공통된 정의가 있을지, 조종사가 저마다 판단하는 것일지. 만약 앞바퀴가 땅에서 떨어졌다면 뒤에 남은 바퀴들을 더 굴려서 떠오르는 게 더 쉬울까? 아니면 낮은 정도로 떠오른 앞바퀴를 다시 땅에 닿게 하는 게 더 쉬울까? 조종사라면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배워서 알고 있을까, 해보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일까.


 비행기가 아닌 각자의 인생을 조종하는 파일럿으로서 나(때로 우리)는 조종실 안에서 매뉴얼도 없이 수많은 단계를 거치며 삶을 작동시키고 있다. 바깥에 서서 이착륙하는 과정을 바라볼 수 없다. 이 비행기의 유일한 승객이기에 '달린다/난다'를 몸으로 느끼는 것밖에 할 수 없는데 조종하면서 느껴야 되니까 그마저 여의치 않다. 지금 이 상태가 나는 중인건지, 그저 앞바퀴가 땅에서 떨어진 상태로 활주로를 달리고 있는 건지도 자신할 수 없는 채로 무언가 결정해야 할 때 갈팡질팡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배가 아니라 비행기고, 활주로를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면 날 수 있다. 비행기가 나는 원리 중에 아직까지 해를 구하지 못한 방정식이 있다고 한다. 답이 없어도 비행기는 난다. 1인 비행기라 좀 경황은 없어도 내 비행기는 내가 조종하는 대로만 난다.   




언젠가 되겠지 오늘은, 일단

기내에 계신 승객분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기 바라며 조종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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