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유방암 ②

4장 둘. 엄마는 추적 관리 중

by 스쿠피

왜 유방암일까.


두 분 다 투병 중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충격, 이후 아버지의 사후 정리를 하느라 아픈 시늉도 할 수 없었던 엄마의 상황이 떠오른다. 수만 명의 유방암 환자가 있어도 수만 가지의 사연과 특징이 있는 법.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투병했으나, 홀로 살아남은 암 환자다. 노년 여성이며, 자존심이 센 외유내강형 기질이다.

문득, 엄마의 기질과 유방암의 특성이 궁금해졌다.

엄마의 유방암은 어떤 생물학적 특성으로 발생하고, 전이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약을 먹으며 치료해 온 걸까.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에는 해독 불가한 용어가 가득했으나, 대략 요약해 보자면 항암 치료, 수술, 방사선 치료, 추적 관리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조직 검사 결과, 유전학적 특성은 없단다. 『굿바이, 유방암』(박경희, 이수현 공저)에 의하면, 유방암 세포의 중요한 특징은 세포가 다른 세포들과 신호를 주고받는 수용체 사이에서 이상 신호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정상적으로 세포가 쪼개지고, 죽고 해야 할 것을 수용체가 과민하게 반응해서(당연히 특이한 형태일 것이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이라고. 유방암의 3가지 수용체(1. 에스트로겐, 2. 프로게스테론, 3. HER2수용체) 중 1, 2번이 과하면 호르몬 수용체 양성 그룹, 3번이 과하면 HER2 양성 그룹, 수용체가 없는 건 삼중음성 그룹이다.(저자는 여기에 해당하는 암 환자이자 당시 내과 레지던트 1년 차 의사였다고 한다.)

엄마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 그룹이었을 것이다. 이럴 경우, 과분비되는 호르몬을 억제하거나 차단하는 방식으로 약제를 쓴단다. 수용체 검사와 상관없이 유방암 치료의 기본적인 항암제 아드리아마이신부터 맞았으리라. 이 약은 ‘빨간 악마’라 불릴 정도로 약이 진짜 빨갛단다. 처음엔 머리카락, 그다음엔 구토와 메쓰꺼움, 혹여 합병증이 생긴다면 피부나 심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서운 약. 엄마도 빨간 약을 먹고 똑같은 고통을 느꼈을까.


이후 항암제 처방은 그야말로 주치의의 영역인 듯하다. 환자에게 맞는 항암제 종류와 조합, 약제 보험 조건까지 까다로워서 처방전을 최대한 믿고 따르는 게 상책이다. 항암 주사나 치료 시간 자체는 길지 않다. 다만, 2~3주 간격으로 루틴을 맞춰야 하고, 약의 부작용을 견뎌내고 관리하는 게 힘들다고 한다. 엄마가 그렇게도 하소연했던 우울한 말들, 몸과 마음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물귀신처럼 사람 늘어지게 만드는 바로 그 부작용도 이즈음이었구나.


전통적인 항암제와 표적치료제는 다르다. 엄마는 표적 치료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따라서, 전통적인 항암제 특성상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 마디로, 깡패 한 놈(암세포) 없애자고 멀쩡한 사람(정상세포)도 다치는 꼴이다.

‘이런. 한때 정상 세포였던 네가 기어이 암세포가 되어 다시 내가 되었구나.

그래도 이 몸속에서 (한솥밥 먹었으니) 끝까지 버텨 보겠다고 아우성이구나.’

같은 느낌이랄까.


엄마는 말 그대로 피가 모자라 외출 나가서 자주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지하철역이든 길거리에서든, 자주 쪼그려 앉았다. 그럴 만했던 거다.


내가 궁금했던 대목의 해답이 나왔다. 항암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저자는 그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항목별로 서술했다. 유방암 환자의 가족으로서 이 부분이 백미라 할 만했다. 읽어 보시라. 탈모부터 무기력증, 점막 염, 심장병, 혈관염, 과민반응, 피로와 근육통, 전신부종, 손발톱의 변화까지.

‘어? 이건 엄마 이야기잖아.’ 진짜 그 부작용 항목에 하나씩 대입해 보면 놀라울 만큼 정확한 증상이었다. 엄마는 지금 한쪽 다리 관절염이 심해 정형외과를 다니고 있다. 발톱 색깔도 까맣게 된 지 오래다. 전신부종, 특히 하지 정맥이 흐르는 다리가 모두 늘 퉁퉁 부어 있다. 게다가 변비까지. 엄마는 명백한 암 환자로서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버텨내는 중이었다.


엄마는 그때 이래서 나한테, 언니한테, 동생한테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울분을 토했구나. 성질을 부렸구나. 전화기에다 대고 꺼이꺼이 울었구나. 그래서 큰언니는 엄마에게 코바늘 뜨개실을 대량 주문했었나. 그래서 작은 언니는 엄마에게 큰 글자 노트와 컬러링 북을 사줬던 건가.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엄마한테 ‘한 줄이라도 오늘 있었던 일을 적어 보라고’ 짜증 내며 말했었지. 엄마는 오래 못할지언정, 그 말을 모두 듣고 실천했던 환자였구나.


저자 말 대로라면, 엄마의 증상으로 보건대, 탁솔보다 탁소텔 계열 항암 주사 횟수가 많았다. 그 항목 부작용 거의 모두 해당하니까. 탁소텔이란, 앞서 말한 빨간 약 아드리아마이신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기본적 항암치료제다. 그저 잘 견디라는 말. 일단 이 터널에도 끝은 있으니 어떻게든 많은 방법과 요령을 터득해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 어쩌면 그것이 유방암 환자 가족에게 가장 기본적인 항암치료제일 것이다.

엄마는 두 번의 가슴 제거 수술로 대중목욕탕에 가질 못한다. 온천을 참 좋아했는데 싶어 수영장 딸린 풀빌라 숙소를 예약했다. 1층 수영장에서 개구리헤엄을 치던 엄마는 해맑은 얼굴로 나와 2층 욕조에 반신욕 물을 받았다. 한참이 지나도 내려오질 않길래 올라가 봤더니, 너무 좋단다. 말 그대로 반신욕에 취해, 통유리창 너머 풍경에 취해 있었다.


“여기 너무 좋네. 내사 마 다른 거 필요 없고 이런 데 있으면서 하루 종일 바깥구경이나 했으믄 좋겠다.“

다시, 엄마의 해맑은 웃음을 보았다. 가슴 없어도 남 눈치 안 보고 온몸을 녹일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흡사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한 장면 같았다. 두 아이가 세간의 시선을 피해 깊은 산 속에서 늑대가 되어 설산을 맘껏 뒹굴며 뛰노는 장면. 엄마는 숙소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깔깔거렸고, 실없는 농담도 해댔다. 오랜만의 물놀이와 반신욕으로 틀림없이 몸이 노곤했을 텐데 눈을 비비며 잠을 참았다. 5살 어린아이처럼.


많이 외로웠을 한 많은 인생 스토리. 그렇게 신세 한탄을 끝도 없이 늘어놓으며 동정표를 구하는 것 같아 못 들어줄 지경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내 안에도 있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엄마는 많이 외로워서 믿을만한 자식들에게나마 그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한 반복되는 엄마 패턴의 말과 드문드문 왜곡된 기억들로 범벅된 추억, 한때 세뇌당한 채 수도 없이 이용당했다고 치더라도 이제 그럴 필요도 의향도 없다는 걸 엄마는 알까.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이런저런 힘든 얘기를 털어놓았을 때, 그 이야기가 지긋지긋해서 더는 못 들어주겠으니 그만 좀 하라는 얘기를 타인에게서 듣고 깨달았다. 그렇게 싫어했던 엄마의 행동을 나 역시 똑같이 누군가에게 하고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그들을 괴롭힌 게 되어 버렸구나. 내 말만 했구나. 내 외로움은 전혀 숙성되지 않았구나. 이건 엄마를 닮은 ‘내 문제’가 되어 버렸구나.

통상적인 유방암 환자 추적 관리 수순은 이렇다. 항암 치료와 수술, 방사선 치료까지 마치고 나면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정기검진을 받는다. 수술 후에는 3년간 3-4개월, 이후 2년간 6개월, 그 이후는 완치라 보고 1년에 한 번씩 검진한다고. 엄마가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엄마의 추적 관리 역시 암 치료의 일부라는 사실, 그리고 죽음의 유예 기간이 유효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엄마와 ‘어떻게 죽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야한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죽음을 배운 자만이 자유롭게 산다.”

-미셸 드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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