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은 체재시간이 짧아 한 가지만 해야 한다. 그것도 호텔에서 멀리 가는 것은 쉽사리 하기 어렵다.
어제의 피로가 쌓였는지 아침을 먹고 한 숨 더 눈을 붙였다. 동남아 비행의 묘미는 아침을 억지로라도 먹고 방에서 한 숨 더 자는 것이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잠도 깰 겸 근처의 커피집을 가기로 했다. 코로나전부터 유명한 집이라 손님이 항상 많다. 그래도 호텔 근처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행운이다.
Take out으로 Brew Coffee와 Milk Coffee 두 종류를 병에 넣어서 판매한다. 이번에는 Milk Coffee 몇 병 서울로 가져가 볼까 한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커피를 고르던 중 새로운 메뉴가 눈에 띈다. "Vader"이다. 스타워즈를 좋아하는지라 망설임 없이 그것으로 함께 주문했다.
이제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기다리기! 손님이 많은지라 주문량도 엄청나다. 그래도 오늘은 자리에 앉아서 기다릴 수 있어 다행이다. 기다리기 싫어서 take out 만 사 가는 손님도 꽤나 있는 듯하다. 여유롭게 주변의 손님들 보는 재미도 솔솔 하다. 송끄란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물총을 든 손님도 있다. 핫플답게 태국 현지인보다 여행객이 더 많아 보인다. 여기저기서 인증샷을 찍느라 분주하다.
내 옆자리 손님은 마치 커피를 온몸으로 느끼듯이 한 모금씩 따라서 눈을 감으며 커피의 맛을 음미하고 있다. 한 모금 마시고 맛을 기록하듯이 메모를 하고 또 물을 마셔 입을 헹궈내고 한참만에 또 한 모금 마신다. 커피로 道을 닦는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멋지다! 사진을 찍고 싶지만 참았다.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나의 Vader가 나왔다. 검은색이라 텁텁할 줄 알았는데 첫 느낌은 부드럽게 넘어간다. 평소에는 라테류의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잘 안 마시는 편인데 이건 느낌이 좋다. 물론 이 가게에서 제일 비싼 커피이니 당연하겠지만 기대를 저 버리지 않아 기분이 좋아진다.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더욱 분주해 보인다. 주문하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지나가는 직원이 30분 후 마감이니 필요한 것 있음 지금 하라고 재촉한다. 물론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슬슬 일어날까 하다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입주위랑 입안이 온통 검정 투성이다. 입을 헹구고 입주위를 닦으니 검은색이 엄청 묻어 나온다. 그냥 나갔으면 우스운 꼴 날 번 했다. 옆자리의 커피음유시인은 이제 마지막 모금을 끝내셨다. 손님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는데 나도 이제 일어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