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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ug 05. 2024

따로 또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내일 점심 같이 할까? 바쁘면 다른 날 잡고.

아니 별일 없다. 내일 보자.


근처 은행에 일 있어 왔다가 간단히 밥이나 먹자며 들른 그와 같이 시원한 콩국수를 먹으러 간다. 식사 중 개인적 사변적 얘기들이 오가고 건강이나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다. 별 중요하지 않은 대화들이다.


그와의 만남은 부담이 없다. 술 한 잔 생각나서 오후 퇴근 시간쯤 '저녁 어때'라고 여부를 물을 때도 혹시 선약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다. 그렇다고 배려나 예의가 없는 건 아니다. 그냥 만남에 하등 주저함이 없다. 주말 다른 계획 없으면 산행할까 하고 연락을 할 때도 약속이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서로 상관을 않는다. 혼자서 등산해도 될 터이니.


간혹 상대의 의견을 묻기도 하지만 그도 나도 주로 본인의 얘기다. 최근 있었던 일, 읽은 책에서 본 생각,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회사일, 가족들의 변화 등. 그렇구나 그랬구나의 응대가 있기도 하고, 어쩌면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다른 가능성 제시 정도의 얘기. 예민한 사항이나 민감한 주제는 스스로 언급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다. 그전에 그가 얘기를 한 내용이더라도. 궁금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가 꺼내길 기다린다. 다른 이에게서 들었어도 말을 옮기지 않는다. 나도 그도.


이래라저래라, 그러면 안 되지 등의 조언은 그를 위한다는 구실로 우위를 가지려는 자기 과시다. 친구끼리라면. 무의미한 간섭이다. 스스로 살펴 돌이켜볼 일이다.


그는 부인이나 자식들에게도 비슷하게 하는가 보다. 한가족이라도 터놓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 다 같이 있어 언급하기 부담스럽고 은밀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건수가 있으면 핑계 삼아 그가 먼저 곁으로 간다. 그리고 둘 만의 오랜 시간을 가지려 한다. 부인이든 자식이든. 가까이 있으니 잘 안다는 착각을 일으키지 않으려 한다.


먼 길을 가야 하는 경우라면 더 좋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부터 밥 먹으며 숙박을 하며 가벼운 농담에서 최근의 고민까지 그가 먼저 그의 속마음을 보인다. 하다 보면 반응이 나타나고 상대 또한 호응의 동조를 보내면서 자기의 가슴을 연다. 둘 만의 시간이기에 더 그렇다. 해서 그는 가족끼리도 모르는 식구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고, 필요하다면 눈치채지 않게 손을 내민다.


어떻게 그렇게 하게 됐을까. 약간씩 다른 의견과 주장들이 있어 토론식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장이 펼쳐지면 누군가 주도하고, 목소리 큰 이의 의견이 대표된다. 입장이 라도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 입을 잘 떼지 않는 경우를 보다 해결책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사람이든 일이든 이렇다거나 저렇다고 규정을 하고 결론짓기에는 각자의 많은 속사정들이 분위기에 묻혀버리더라는. 내려진 결정에 동의하느냐의 질문엔 긍부정도 아닌 얼버무림이 대세 편입으로 인정한 꼴이 되어 버리고 마는.


그래서 따로 만남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며. 가족도 친구도 서넛이 같이 있을 때와 둘만 있을 때는 다르지 않을까. 혼자만의 세상에 들어가 소통을 어색해하는 누구든 그의 관심의 대상이다. 물론 가족이나 친지, 친구 또는 직장 내로 어느 정도 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먼저 카톡 하고 전화하고 밥 먹자 하기도 하고, 어딜 가려는데 시간 되면 같이 가자고 건드려본다. 답변이나 반응이 온다면 기회가 만들어진 거다. 분위기가 익어가고 슬쩍 그가 먼저 치부를 드러낸다. 네가 보기엔 내가 어떤 사람일지 몰라도 사실 나 이런 놈이거든. 소심하고 잘 삐치고 뒤끝도 있고. 얼마 전에 공황장애로 고생했는데 아직도 그 목 막힐 답답함이 한 번씩 울컥 올라오기도 하고 등.


만남이 잦아지고 내밀한 감정이 표현으로 드러나 시원한 속풀이까지 이르러 울고 웃고 편해지고, 이래도 괜찮구나라는 믿음이 생기면 둘은 하나가 된다. 그렇다고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에게 참 부지런하다고 했더니 그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좋다고 한다. 기꺼이.


사람에 따라 둘만 있는 상황에서도 서로 피상적인 말만 오가는 경우가 있다. 만남을 위한 만남이 나쁘지는 않지만, 만나려고 만나는 경우는 둘이 있어도 혼자다. 나의 아픔을 드러내면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러니 앓는 소리 말라고 하거나, 누구나 다 그렇다며 퉁치고 넘겨버린다. 그도 속이 편치 않다고 말은 하지만 구체적 언급이 없다. 그런 게 있지만 말하긴 뭣하다는 정도에서 말을 멈춘다. 친한 친구처럼 보여도 그들은 얼굴만 아는 지인 정도의 수준에 머문다.


마시기 위해 밥 먹기 위해 옆에 앉아있어 줄 사람이 필요한 거다. 얼굴 표정에 읽히는 고민을 설핏 물어도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뭐 그런 게 있지만 별 것 아니라고 덮어버리고 우스개 소리나 가십으로 넘긴다면 더욱 술자리용 친구다. 같이 있어도 따로인 친구. 외로움을 깔고 앉아 있으면서 외로움을 외면하려 한다.


오래간만에 주말 하루 친구들과 계곡으로 피서 간다. 멤버 외 다른 이가 모임에 동행을 원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이다. 같이와 따로가 겹쳐지면 기왕에 알던 것과 다른 면들이 서로에게 보이고 서로 보게 될 이면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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