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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05. 2024

즐거운 가게

함께 더불어 어울림

꿈꿔왔던 공동체를 봤던가 보다. 계산하고 따지고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바로 들어가 활동을 한다. 다양한 연령대가 같이 어울리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활 속으로 들어온 공동체. '더불어 함께 함'을 가치로 하여 서로 만나 편하고 즐거운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여 모인 생활협동체.


사람들의 휴식처요, 재능을 펼칠 무대요, 세대차를 공유할 수 있게 한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자리. 애들끼리는 화면에 낙서하고 옆 테이블에선 어른들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요일을 정해 노래와 연주가 있고, 시詩 낭송회가 있고, 누군가는 사진 전시회를, 누군가는 붓글씨 전시를 하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한글 수업이 펼쳐지기도 하고, 어린이들의 피자 만들기 같은 요리 수업이 있기도 하다.


주문은 하지만 셀프 서빙이요 웬만한 반찬이나 필요 도구나 식기들은 알아서 가져가 해결한다. 술이나 음료도 주문 후 알아서 각자 냉장고에서 꺼내간다. 가격의 부담도 적다. 어찌 보면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다. 손님으로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식당이 아니다. 건강을 먼저 생각하여 친환경 식재료로 합리적 가격을. 이 가게의 모토다.


봉사활동처럼 대상에 대한 베풂이 아닌, 사회 활동이면서 일상의 일부분이 되어 편하게 가고 모일 수 있는 공간 공동체. 수익 창출과 이윤 추구가 목표가 아닌 곳이라 자본의 논리는 비껴 서있다. 하고자 하는 지향점에 주변인들이 동참하여 회원이 된다. 가입비 외에 별도의 회비도 없다. 벌어들인 수익으로 필요 경비를 제하고 남은 돈은 기부와 봉사활동비로 지출한다는 강령이 뚜렷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 형태로의 성공은 쉽지 않았다.


홍보는 알음알이와 소개로 이뤄지고, 가입 회원의 증가가 더디고, 참가자들의 자발적 동참에 동기 부여가 약해지고,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기도 했다. 취지와 달리 돈벌이 방법으로 경영하려는 시도가 있기도 하고, 사적 이용을 요구하는 회원도 있었다. 자체 회계 감사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운영 실패가 잦아지면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렇게 유야무야로 흐지부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공사의 구분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고, 책임에 무거움을 감당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물론 이사장은 회원들에 의한 선출이다. 즐길 공간으로는 좋은데 별 이득이 없다. 추대되어 이사장이 되기도 하고 고사하기도 한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있는데 선뜻 앞장서는 이가 없다.


재정적 지원의 손길도 필요하다. 모임이 지속되기 쉽지 않다. 개인적 시간까지 할애해야 하는 상황.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아도 운영이 될 정도의 이윤이 나와야 하고, 더 많은 회원 모집이 이뤄져야 좀 더 원활해지는 공동체는 다 같이 함께 어울림을 꿈꾸는 이가 아니면 어렵다.


친구는 그렇게 이사장이 됐다. 직함은 있지만 권한은 없다. 학원 강사로 나름 실력을 인정받아 그에게서 수업을 받길 원하는 학부모들의 연락이 끊임없었다. 주로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부모들에게서 소문이 많았다. 수능이나 대입을 위한 일반 학생반 교실도 있지만, 전문반이 따로 마련되어 대회에서 상위의 성적을 낸다는 소문이 났다. 학원 원장이 되고, 높은 수준의 수업을 이끌기도 하고, 결과물이 좋았어도 그는 다름 삶을 동경해 왔던가 보다. 한동안 그가 학원을 하면서 공동체에 간간이 참여하는 이중 생업을 한 이유였다. 


회원으로 있을 때부터 무료 봉사를 하기도 했지만, 공동체가 경영 악화로 허덕일 때 월세와 인건비 부족분을 학원의 수익에서 충당했다. 그렇게 투자 아닌 투자를 하냐고, 밑 빠진 독처럼 보이는데 그렇게까지 필요가 있느냐, 집사람은 아느냐, 동의는 하더냐며 다들 무모해 보이는 짓이라 했을 때도 그는 공간을 살리고 싶었던가 보다. 당연히 가정을 팽개친 건 아니란다. 고맙게도 부인이 교사라 경제적 문제를 감당해주기도 하고, 그런 공동체에 친구가 할 수 있는 몫을 담당하는 걸 이해해 주더라고. 친구보다 오히려 부인의 덕과 안목이 더 눈에 띈다.


그러다 3-4년 전부터는 아예 학원을 접고 본격적으로 가게에 뛰어든다. 직접 요리도 하고, 메뉴 개발도 하고, 운영 프로그램도 짜고, 주야의 업종을 달리 시도하기도 한다. 낮엔 화덕 피자와 파스타, 밤엔 실내포장마차 형태로. 예술 활동을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하고, 놀이와 실습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독서토론이나 학습을 위한 장이 되기도 한다. 사심 없는 노력의 결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이젠 나름 자리를 잡았는가 보다. 빈 테이블이 드물다.


그가 꿈꾸는 공간에 대한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여기서 앞으로 뭐 하고 싶은데? 네가 바라는 궁극이 뭔데? 그는 말없이 웃으며 가게 이름을 들먹인다. 라온누리 - 즐거운 세상. 편하게 찾아와 쉬다 가는 동네 사람들로도 가게가 유지된다. 참새의 방앗간으로. 예전 복덕방처럼. 자기를 뽐내고 자랑하고픈 행사장으로. 


바쁜데도 그의 표정이 즐거워 보인다. 다른 곳에선 느끼기 힘든 산만한 질서. 어수선한데 조화로운, 카오스 속 코스모스 같다. 놀이가 직업인 본보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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