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bar) 오픈을 도와주다 보니 면접을 많이도 보았다. 물론 옷가게를 할 때에도 아르바이트생 면접을 본 일이 있다. 불쑥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이 '하 사장님'이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별명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딱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이유가 없다. 그냥 친구 하나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다른 친구들도 곧잘 그렇게 불러댔다. 21살 옷장사를 시작으로 22살 바(bar)를 오픈하며 나는 정말 '하 사장'이 되었다. 물론 바(bar)에서는 매니저 역할이었음에도 그랬다. 이즘 되니 별명이란 게 참 중요한가 싶다.
당시 내가 20대 초반 때에만 해도, 정통 바(bar) 뿐만 아니라, 칵테일 바(bar), 재즈 바(bar) 등이 성행했다. 길을 걸으면 한 건물 건너 하나씩 바가 보일 정도였다. 직접 바텐더 대회에 출전하진 않았지만 이따금씩 병을 돌리고, 칵테일 쇼를 선보이는 대회를 다녔다. 무색의 내가 그런 곳에 섞여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당시 구인 광고는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등에 광고를 올리고 전화가 오면 면접을 봤다. 바텐더라는 게 직업도 아니거니와, 자유로운 청춘을 끌이자니 좀체 쉽지 않았다. 문의만 많고, 면접을 보더라도 마뜩지 않거나 일을 주어도 금세 그만두는 게 큰 골칫거리였다. 내가 경영했던 바(bar)는 특색이 있거나, 별 다를 게 없었지만 사람들이 하나 인정하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좋은 사람들이 오래 함께 일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비면 나는 여차 없이 좋은 사람을 구해 가져다 놓았다. 우리 가게 옆에 삼겹살집 사장님도, 그 옆에 옷가게 사장님도 내게 구인 광고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어떤 때에는 면접까지 봐 드렸다. 이까짓 거 무슨 돈을 받나 싶었는데, 점점 일이 많아지자 돈까지 받으며 그 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사장님들이 낸 구인 광고는 연락이 안 오고, 똑같은 가게 구인인데도 내가 올린 광고는 연락이 온다. 그때에는 내게 사람이 붙는 능력이 있나 착각했지만 이유가 있었다. 독특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구인 광고를 전혀 보지 않았다. 천편일률적인 구인 광고 속에 나의 광고만큼은 편지 쓰듯, 상세하게 감정이 담긴 솔직한 글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에만 해도 구인 광고는 죄다 비슷한 문구, 말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인형 뽑기 하는 것도 아닌데 똑같은 글귀에 어쩌다 걸리는 사람을 기다렸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법을 따라하는 것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최선의 방법이기에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 다르게 할 용기가 없는 것일수도 있다. 남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삼겹살집 사장님 가게에 직원 한 명을 구하는데 내가 면접을 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숙식이 가능할까요?"
"네? 아.. 그건 제가 사장님께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일을 얼마나 하실 건가요?"
"1년 이상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숙식이 해결이 안 되면 어려울 것 같아요.."
스무살의 앳되고 가녀린 여자였다. 왠지 마음이 가고, 도와주고 싶었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집을 구하기 전까지는 저희 집에서 지내실래요? 저 혼자 살아요."
"아 정말요? 전 너무 감사하죠. 정말 감사해요."
우리 가게 직원도 아니었는데 선뜻 그렇게 낯선 여자를 들이게 되었다. 워낙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어서일지 크게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함께 지낸 지 한 달 반쯤 지나고 있었나. 그녀가 봉투를 내밀었다.
"언니 저 월급 받았어요. 이거요.. 작지만.."
"이게 뭐야?"
그녀는 편의점에서 파는 하얀 봉투에 만 원짜리 스무 장을 담아 내게 내밀었다. 일 푼도 받을 마음이 없었는데, 선뜻 돈을 내미는 그녀에게 짠한 마음이 들었다.
"안 줘도 되는데 진짜.. 이 돈으로 언니가 내일 장 봐서 맛있는 거 해줄게! 두둑하게 먹자"
하얗고 가녀린 그녀가 싱그럽게 웃었다. 다음 날, 마트에서 장을 보며 맥주 두 캔을 집었다. 나야 술을 못 마셔서 안 마시지만, 그녀는 어쩐지 몰랐다. 우리는 한 달 반을 함께하면서 한 번도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처럼 술을 못 마시려니 넘겨짚었다.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맥주를 한 잔 마시는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녀가 내게 물었다.
"언니. 언니는 왜 저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보세요?"
작은 입술로 옹알이하듯 내게 수상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너한테 뭘 물어봐야 하는데?"
"그냥요.. 부모님은 없냐든가.. 뭐.. 여러 가지로.."
"부모님이 없으면 네가 태어났겠어? 얘도 참! "
나는 괜히 농담을 던지며 웃어 보였다. 굼뻑이는 슬픈 눈을 보면 직감적으로 묻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상처 주고 싶지 않았고,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 사실, 17살에 엄마 집에서 나와 이모집에서 살았는데요. 얼마 전에 이모집에서도 나왔어요. 17살엔 양아빠에게 성추행을 겪었고, 이모집에선 이모부에게 그런 일을 겪어서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큰 상처들을 내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고 처음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당황하는 마음과 달리, 불편한 침묵을 못 견디고 입이 열렸다.
"경찰에 신고했어야지. 엄마는 알고 계셔?"
"아마도요. 양아빠랑 많이 싸우셨어요. 제겐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지만요."
우리는 그날, 밤이 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되지도 않는 조언들을 해대며 함께 울고 웃었다. 외롭고 험난하게 살았던 그녀에겐 남자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내 눈에는 미덥지 않았지만 이내 곧 둘이 함께 산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뻔한 레퍼토리인지 모르겠지만 사랑으로 상처받은 그녀는 사랑을 받고자 21살의 아린 나이에 시집을 갔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상처를 회복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