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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an 01. 2024

변해 가네,
너무 빨리 청춘이 가버렸네

여전히 청춘이 아니라도 추억을 만드는 사랑에 빠지고 싶네요


 
그립습니다. 

그리고 새벽이 밝고 바람이 부네요. 

당신이 있는 그곳도 바람 치는 찬 겨울인가요?! 

한 해를 마감하는 세모의 가랑잎 위로 가랑잎이 거푸 지면서 혼자 노는 나를 자꾸 창가로 불러 세우네요. 

아니겠지요. 거긴 사철 따뜻한 봄날일 거죠. 

온갖 꽃이 피고 있을 거죠. 

 

오랜만에 만난 친우와 추위를 달래려고 잠시 들린 국밥 집에 들어선다. 

불 같은 청춘에는 속옷도 외투도 없이 잘 버텼건만 나이가 드니 추위를 잘 탄다.

곁 테이블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는 내 또래 아저씨(?)들이 낮술을 마시며 떠들어댄다. 

내용은 과거의 화려했던 자랑이라는 추억 찌꺼기를 안주 삼아 이야기 꽃이 한창이다.

청춘을 돌려 달라고 한다”. 

그 시절은 정의롭고 아름다웠 단다”. 

그 시절이 무엇이 그리 좋은 지, 박장대소를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청춘을 돌려 달라거나 청춘이 아름다웠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이 이상하거나 기억에 심한 

왜곡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청춘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리학적으로 설사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청춘은 늘 아름답지는 않다”라고

하네요. 내가 겪은 것처럼 결코 고통스럽지 만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으면 뭘 하겠나요? 

다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걸 알기에 단지 ‘안타깝다’라는 것뿐이다..
 
 

청춘이라고, 사랑에 빠졌다

그 시절, 그 사랑 때문에 한 때 시도 만들고 소설도 써서 연서로 주었다
 
내 얼굴은 그래도 누가 봐도 잘 생긴 편이고 느낌은 곱상한 샌님인 편이다.

체격과 수줍어하는 성격은 생각하지 못한 채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을 보고는 첫눈에 반한 것이다. 말을 걸 용기가 없어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도서관 3층 열람실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의 음성을 엿듣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겨울이 한참인 눈발이 흩어지던 어느 날이다.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그의 친구 덕분에 별명까지 알고 나서 조용히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 인다.
 그렇게 1학년 2학기가 끝나갈 즈음, 도서관을 들어가다가 입구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겨울방학이 되면 몇 개월 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는 두려움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 같다. 하교 길 그녀의 집까지 쫓아가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너를 좋아한다고’ 사귀는 건 어떠냐?"라고.
그 대답은 “그래서 어쩌라고요?”
지금도 못 잊는, 그녀가 내게 선물한 첫마디다. 

매몰찬 어투와 달리 그녀는 내 앞에서 머뭇거렸고, 캔 커피를 건네며 한참을 떠들었다. 

그런 용기가 내 안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 

그녀와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겨울이 한창 깊어 갈 무렵, 그녀는 소심하고 불안하고 구질구질한 나에게 지쳤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숨기고 싶던 나의 실체였다.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한참을 그녀와의 시간과 잔영 속에서 살았다. 

어디서든 그녀의 모습이 보였고, 어디서든 그녀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나도 몰랐었다. 

정말 한심했다. 그해 낙제를 했다. 

그리움과 열등감이 커질수록 거리엔 슬픈 노래는 더 많이 흘러나왔다. 

잊어야 한다면 잊어지면 좋겠다’고 외쳤지만, 그녀는 뇌리에 더 깊이 똬리를 틀었다. 

잊을 용기까지는 없었고, 그저 한 번만 더 그녀를 보고 싶을 뿐이었다. 


우리에게 제시되고 요구되는 미래를 벗어날 용기와 지혜가 없음을 느껴서였을까? 

그때는 겨울에도 추위를 타진 않았다.
반드시 돌아와 다시 찾아가 당당 그 앞에 서리라고 외치며 나는 그 아픔을 잊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났다. 

그 우울함과 열등감이 좀 더 공부하고 무모한 도전이라는 혼자서 해냈으니 스스로가 기특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만 오래전 이야기이고 어느새 모든 게 변해 가고, 

너무 빨리 청춘은 가 버렸네요.

돌아보면 다 아름답지도 않았고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이런 겨울밤이면 가끔 그립네요.
내게 아픔과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그리워지네요.
여전히 난 청춘이 아니라도, 추억을 만드는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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