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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Mar 09. 2022

순대는 막장에!

어릴 적 먹던 추억의 음식

순대를 처음 먹은 것은, 그 이름도 찬란한 마산의 '성안 백화점' 지하 푸트코트였다. 김밥도 아닌데 쌔까맣고 동그란 음식은 쫀득쫀득했고, 아빠의 가죽 잠바에서 나던 향이 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를  막장에 푸욱 찍어서 먹으면 참 맛이 좋았다.


그 이후로 종종 국숫집이나 푸드코트에서 순대를 먹곤 했다. 나들이를 가는 길에 주전부리를 하러 들른 국숫집 같은 식당에서 나오는 순대는 여러 내장 부위도 함께 나왔다. 내장은 냄새가 심해 먹기 못했지만, 간혹 돼지고기 수육이 몇 점 나오는 곳에서는 수육과 순대를 함께 먹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수육이라고 생각하고 먹었던 부위가 어쩌면 염통이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앞의 분식점에서 한 개에 백 원씩 하던 떡볶이나, 이백 원 하는 튀김에 비해 순대는 한 접시에 몇 천원씩 줘야 했던 음식이었다. 그래서 순대는 부모님과 함께 가거나 학원 선생님이 크게 인심을 내시는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피아노 학원 앞 참기름집에서 순대 한 봉지를 사 오시면 아이들이 둘러앉아 막장에 콕 찍은 순대를 한 입씩 얻어먹었다. 또 겨울날, 야간자율학습 감독으로 늦으시는 아빠를 기다리면서 엄마와 동생과 함께 아파트 앞 트럭에서 호떡과 순대를 사 먹기도 했다.


중학교에 진학을 하고 난 후 지갑이 두둑해지면서 친구들과 돈을 모아 분식집에서 떡볶이 천 원치, 순대 이천 원치 사 놓고 나눠먹기 시작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날에는 순대 튀김을 사 먹곤 했다. 자주 가던 제일여중 밑의 '명동 칼국수'라는 분식집에서는 순대를 큼직하게 썰고 바삭하게 튀겨서 하나에 이백 원에 팔았다. 어느 조각이 가장 큰지 눈치로 고른 튀김을 양념치킨 소스에 찍어서 먹었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임신한 사실을 모르는 여자 주인공이 순대를 계속해서 사 먹는 장면이었다. 특이하게도 순대접시에 빨간 소금이 함께 나왔다. 순대는 막장에 찍어먹어야 하는건데 왜 저렇게 나오지? 생각했었는데, 서울에 와 보니 정말 순대를 시키면 소금을 줬다. 매콤하고 달콤한 막장에 푹 찍어 먹는 순대에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짭짤한 소금에 찍어 먹는 순대는 너무 어색했다.


내가 서울에서 다니던 학교 정문에 포장마차 분식점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여러 지역에서 온 학생들의 입맛을 고려해서 다양한 순대 양념들이 있었다. 아주머니가 순대 한 접시를 썰어 넘겨주면,  각자 원하는 양념을 덜어 먹었다. 경남에서 온 학생들을 고려한 쌈장 한 통도 당당하게 놓여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 숟가락 덜어 와서 순대를 찍어 먹는데 마산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다.


방학때 마산에 내려가 단골 분식점에 들러 순대를 한 접시 먹었다. 서울 생활이 어땠냐고 묻는 분식집 이모에게 서울사람들은 순대를 소금에 찍어서 먹더라, 쌈장에 찍어 먹어 봤더니 이 맛이 나지 않는다 하니 웃으면서 쌈장에 사이다를 적당히 타면 된다고 하신다.  뒤로 순대를 포장해서 집으로 올 때면 언제나 사이다 한 병도 사 왔다. 신림동의 순대 타운에서 백순대도 먹어 봤고 유명한 맛집의 순대볶음도 먹어봤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맛있는 순대는 막장에 푹 찍어 먹는 어릴 적 먹던 그 순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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