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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Nov 09. 2022

백숙과 닭죽

어릴 적 먹던 추억의 음식

지난여름, 아이의 방학을 맞아 남편과 함께 친정에 다녀왔다. 사위가 복날 언저리에 왔다며 엄마는 우리가 도착한 다음 날 새벽부터 닭을 삶아 백숙을 해 주셨다. 큰 곰솥에 끓인 엄마의 백숙은 이것저것 넣지 않아도 늘 맛이 좋다. 즈음 엄마의 백숙은 큰손 엄마답게 1인당 1마리씩 닭을 잡아 끓여주신다. 7살, 6살, 4살 손자 손녀도 1인으로 쳐 넉넉히 만드신다. 당연히 닭죽은 남고, 손도 대지 못한 닭과 죽은 김치냉장고에 갈무리해 두셨다가 먼 길 떠나는 딸의 손에 들려주신다.


우리가 어릴 때는 시장에서 큰 닭 한 마리를 사 와 백숙을 만들어 고기를 먼저 먹고 남은 국물에 죽을 끓여서 먹었다. 나는 닭의 뱃속에 들어있는 밥을 참 좋아했다. 우리 집 백숙의 밥은 쌀 대신 찹쌀이 더 많이 들어가 달큼하고 쫀득쫀득하고 닭고기 맛이 배어 맛이 참 좋았다. 그렇게 끓여둔 찹쌀 죽은 냉장고에서 먹을 만큼 꺼내어 전자레인지에 데워 짭짤하게 소금 간을 해서 며칠 동안 간식처럼 먹었다. 우리 집 닭죽은 애호박, 당근, 양파 따위의 다진 채소 없이 밥만 넣어 끓인 죽이라 어린 입맛에는 더 좋았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우리 아빠는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하셨는데, 거기서 만난 몇 분들과 종종 가족 모임을 가졌다. 그 모임에서 한동안 "몽돌로"라는 식당을 자주 갔다. 은 잔디밭에 차려진 상 앞에 앉으면 곧 커다란 백숙이 나왔다. 열심히 닭고기 살을 발라 소금에 콕 찍어 먹고 있으면 뜨끈한 닭죽이 나왔다. 닭죽이 나오면 먹다 남은 닭고기를 쭉쭉 찢어 죽에다 넣어 고기가 잔뜩 들어 있는 죽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시원한 여름밤, 닭고기와 닭죽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어른들이 말씀 나누시는 동안 우리는 잔디밭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해먹으로 그네도 타며 놀았다. 한참 놀다 보면 구수한 닭고기 냄새는 사라지고 상쾌한 여름밤 풀냄새가 났다.


닭죽을 좋아하던 나 급식소에서 주는 삼계탕도 곧잘 먹었다. 급식을 시작했을 당시 우리 학교의 삼계탕은 고기 조금에 흰 죽이 훨씬 많은 모양새였다. 친구들은 인삼 냄새가 난다며 싫어했지만 나는 닭고기 국물의 감칠맛이 스며 있는 죽이 너무 맛있어서 항상 더 받아서 먹곤 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은 초복에 삼계탕에 도전해 보았다. 닭 한 마리를 사 와서 손질하고 뱃속에는 각종 재료를 채워 넣었다. 냄비에 푹 익힌 닭은 소금만 콕콕 찍어 먹어도 참 맛있었다. 다만 마지막에 마무리할 닭죽이 모자라 아쉬웠다. 그 뒤로는 요리용 거즈에 불린 찹쌀 한 컵을 묶어 따로 넣는다. 그 밥은 주걱으로 덜어 소금을 뿌려 밥처럼 먹기도 하고, 국물에 말아 국밥처럼 먹기도 한다. 혹시나 남으면 국물에 누룽지를 더해 다음 날 아침으로 먹기도 한다.


주부 경력이 오래되면서 그만큼 꼼수도 늘었다. 이제는 닭 한 마리를 사 와서 황기 국물을 우리는 동안 닭을 손질한다. 깨끗이 손질한 닭과 거즈에 싼 불린 찹쌀을 팔팔 끓는 황기 국물에 넣어 푹 익힌다. 첫날은 닭다리와 닭날개살을 백숙으로 먹고 찹쌀밥은 소금 간을 해 주먹밥을 만들어주면 아이가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다음번엔 남은 국물에 무, 감자, 양파를 넣고 가슴살을 잘게 찢어 닭곰탕으로 먹는다. 또 남은 국물은 따로 덜어 라면 사리나 국수사리를 넣어 닭고기 기스면을 먹고 마지막엔 누룽지를 팔팔 끓여 아침밥으로 따끈하게 먹으면 닭 한 마리로 몇 끼를 먹는다.


으슬으슬 추워지는 환절기인 요즘, 닭 한 마리 사 와서 뽀얗게 익혀 맛나게 먹고 추운 겨울을 날 힘을 비축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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