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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로 Jul 30. 2024

여름. 402호.

민규의 서울살이

 맴, 맴, 매앰—.


 쓰르라미인지 매미인지 모를 벌레의 힘찬 울음소리가 여름날의 뜨거운 아침을 울린다. 나눔아파트 502동 402호의 새 거주자인 민규는 늦은 아침을 이렇게 시작했다. 어설픈 기지개를 펴고 소파에서 겨우 일어난 민규는 밤새 털털 거리던 선풍기가 드디어 맛이 간 것을 알게 되었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이 남자는 페트병에 든 미지근한 생수를 목구멍에 들이붓고 정신을 차린다.


 “식빵이, 식빵이 어딨나. 어? 으윽!”


 은근히 콧노래를 부르며 식빵을 찾는 민규는 식빵 봉지 안에 새파랗게 핀 곰팡이의 전성기를 목도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아침을 걸러야 했던 상황이지만, 민규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어머니가 준 시루떡.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이사떡이냐며 손사래를 치던 그가 그것의 유일한 방도를 알아낸 것이다. 그는 싱크대에서 간단히 손을 씻고 비닐 봉지를 벗겨내어 다 식어 퍽퍽해진 시루떡을 입안에 쑤셔 넣는다. 조촐한 아침식사의 처량함을 느낄 틈도 없었던 민규는 베란다 밖을 본다. 해가 중천이다. 여름 햇빛이 낡은 샤시를 통과하며 거실 중간 즈음까지 스며든다. 계약직이라도 나름 서울의 C고등학교 사회 교사로 일하게 되어 충북 산골 어딘가에서 상경한 민규는 여름날 주말에 서울 아파트에서 홀로 독립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 약간의 만족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아, 저거 버려야 하나.”


 슬쩍 고장 난 선풍기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모 대학 기숙사에 살던 시절, 민규가 찜통 더위에 참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산 첫 물건이었다. 남들은 첫 일당으로 부모 밥이라도 사준다는데, 너는 불편하답시고 고작 사는게 중고 선풍기냐는 아버지의 불평을 참아가며 마련한 것이었다. 민규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화장실로 들어가 더위도 식힐 겸 수압도 얼마 나오지도 않는 샤워기로나마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감고 난 후 민규는 자신이 할 일이 이제 없음을 알아 버렸다. 이삿짐도 거의 정리가 되었고, 오늘은 주말인 데다가, 아직 첫 출근도 하지 않았다. 서울에 연고도 없어 같이 지낼 친구도 없는데, 아파트에 친하게 지낼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살인적인 더위는 민규를 서울 외곽의 낡고 작은 복도식 아파트의 한 칸 방에 가두었다. 또다시 머리를 긁으며 스리슬쩍 민규는 끈적한 장판 바닥에 등을 기댄다. 물론, 민규도 이것이 의미 없는 행위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이게 무슨 서울 살이야.”


 민규는 천장에 벽지 주름 개수만 하릴없이 세며 몇 시간 같은 몇 분을 보냈다. 무엇이라도 결심한 듯 그는 고장난 선풍기를 들고 현관문 밖을 나선다. 그의 서울 살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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