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화의 가화만사성
“학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딴길로 새지 말고, 알았지?”
은화는 8살 아들을 태권도 학원으로 보내고 모처럼 자신의 노모와 여유로운 주말 오전을 맞는다. 그녀는 탐스럽게 깎은 과일을 노모 앞에 가져다 주며 싱긋 웃는다.
몇 년 전 은화는 남편과 이혼하면서 아들과 노모를 데리고 나눔아파트로 쫓겨나듯 이사를 왔다. 아마 서른 중반 남짓한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사 온 이후에도, 어린 아들과 관절염이 심해진 노모를 부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올해부터 평일 오후나 주말 오전에는 태권도 학원에 맡길 수 있어 은화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과일을 다 먹고 난 후, 은화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넌다. 한창 빨래를 널고 있을 때쯤, 그녀에게 전화가 온다. 그녀는 발신자를 보고 이내 무시한다.
[부재중 전화 1건: 행복요양병원, 0XX-XXX-XXXX]
은화는 H화장품 공장 생산직에 취직한 며칠 전부터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된 노모를 어떻게 부양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다른 바쁜 형제자매에게 노모를 맡기기엔 미안한 일이고, 요양병원에 보내자니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를 저버리는 것 같아 그것대로 죄송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큰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 것조차 은화는 큰맘 먹고 결정한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요양병원 건은 은화에게 깊은 고민과 불안을 낳았다.
빨래를 다 널 때 쯤,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엔 발신자가 다르다.
[민규 태권도 관장님, 010-XXXX-XXXX]
“아 네, 관장님. 무슨 일로……“
”어머니 혹시 민규 못 보셨어요? 오늘 도장에 오질 않았네요?“
은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마치 세상이 무너질 듯, 얄궃게도 하늘이 흐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