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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로 Aug 02. 2024

여름. 나눔슈퍼.

옥 선생의 황혼

 민규는 새집살이에 필요한 물건들도 장만할 겸, 저녁에 장을 보러 아파트 앞 나눔슈퍼로 갔다.


 장을 다 볼 무렵, 8살쯤 되어 보이는 태권도 도복을 입은 아이가 슈퍼 입구의 아이시크림 냉장고 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다른 아이스크림도 아닌, 자기 혼자 다 먹기도 힘들 큰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만을 향했다.


 엄마도 아빠도 함께 투게더.


 대충 그런 광고 카피가 떠오른 민규는 이내 아파트로 향하려 했다. 그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민규야! 너 거기서 뭐해!”

 “엄마…?”


 순간 자신을 부른 줄 알고 민규는 — 그러니까, 402호 —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에선 어떤 여성이 그 아이를 부르고 있었다.


 “너 지금까지 태권도 안 가고 여기 있었던 거야?“

 ”아니… 가는데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렇다고 여태까지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얼른 집에 가자.“

 ”아이스크림은…?“

 ”넌 이 상황에서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니? 진짜 어쩌면 좋을까…“


 이때 슈퍼에서 두 중년 남성이 — 한 명은 50대 후반, 한명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 껄껄 거리며 나왔다. 50대 후반의 남성의 손에는 막걸리가 들려 있었다.


 “거 은화 씨, 애가 먹고 싶다는데, 야단치더라도 일단 사줍시다.”


 백발 노인은 냉장고에서 큰 통에 담긴 그 아이스크림을 꺼내더니 슈퍼 주인에게 말했다.


 “어이, 이것도 좀 살게!”

 “오천 원 놓고 가슈.“


 주인이 대답하자 노인은 품 안에서 지폐를 꺼내 다시 슈퍼로 들어갔다. 50대 후반의 남성이 민규에게 말을 건넸다.


 ”어? 못 보던 청년인디… 혹시 이사 왔어요?“

 ”예? 네…“

 ”그러시는구나. 지는 요 앞에서 철물점 하고 있는 유일연이유. 뭐 고칠 거 있으면 203호 와서 말하슈.“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 영 낯설었던 민규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백발 노인이 슈퍼에서 나와 아이스크림을 은화의 아들에게 건넸다.


 ”꼬마야, 앞으론 태권도 늦지 말거라. 너네 엄마 걱정하시잖냐.“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


 은화도 고개를 숙여 노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노인은 살갑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은 잘 계시죠? 건강하셔야 할텐데…“

 ”예… 아, 시간이 늦었네요. 민규야, 얼른 집에 가자.“


 은화와 그녀의 아들이 길을 떠났다. 노인은 낯선 민규의 얼굴을 보며 말을 건넸다.


 “이 친구가 요번에 이사 온 친구구만. 난 저기 204호 사는 노인네야. 그냥 ‘옥 선생—’이라고 불러주면 돼.”

 “아… 예…”


 민규는 두 남자의 사교성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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