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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로 Aug 06. 2024

여름. 아파트 앞 놀이터

옥 선생과의 두 번째 만남

 민규는 ‘옥 선생’을 마주한 이후로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낀다. 출근할 때 아파트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204호 앞에선 노인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주말에 아파트 주변을 걷고 있을 때마다 정자에선 — 자기 말로는, ‘일연’이라는 이름의 — 그 철물점 주인과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쓰레기를 버릴 때는 고철 버리는 곳에, 장을 보러 슈퍼로 갈 때는 막걸리가 있는 냉장고 앞에 있었다. 민규는 점점 자신이 노인을 따라다니는지, 노인이 자신을 따라다니는지 헷갈렸다.


 어느 주말, 민규는 전화기 속 체력 좀 기르라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밀려 놀이터 철봉 앞에 섰다. 대학생 때나 군대에 있을 때 체력은 누구한테 밀리지 않았던 민규는 직장 생활에 급격히 쇠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주말에 운동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놀이터 앞 정자에는 일연과 옥 선생이 여느 때처럼 있었다. 민규가 팔에 힘을 팍 주면서 철봉 위로 올라설 때, 눈앞의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꽈당—.


 그러니까, 킥보드를 신나게 타던 아이가 앞을 주의 깊게 못 본 나머지 급커브를 돌다 정자 앞에 서 있던 옥 선생의 옆구리를 핸들로 치고 만 것이다. 아이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바로 알았는지, 금방 눈시울을 적셨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애가 조심히 놀았어야 했는데… 괜찮으세요? 민규야, 조심했어야지.”


 ‘민규? 그 나눔슈퍼?’

 402호의 민규는 순간 지난번 나눔슈퍼 앞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어이구, 민규구나. 괜찮아요, 애들이 놀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죠. 다음부턴 조심히 놀거라—.“

 ”네, 할아버지……“


 옥 선생과 은화, 그리고 은화의 아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이 쏠린 402호 민규는 자연스럽게 옥 선생의 곁에 일연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옥 선생과 일연이 바둑을 두는 것이 아니라, 웬 고물 선풍기를 고치고 있었다.


 ‘선풍기? 어? 선풍기!’

 민규는 그제야 자신이 버린 그 선풍기를 알아봤다. 요즘 같은 시대에 10년 가까이 된 고물 선풍기를 가진 사람은 자기밖에 없었기에, 단번에 자신의 것임을 알아챘다. 민규는 왠지 모를 당혹스러움과 분노감에 일연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남의 선풍기를 그렇게 가져가시면 어떡해요!”

 “아, 나눔슈퍼 앞에서 봤었던 그 청년이구만. 난 쓰레기장에 있길래 버리는 건 줄 알았지—.”

 “암만 그래도 남의 걸…”


 민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연이 먼저 말을 건넸다.


 ”거의 다 고쳤으니 가져가슈, 그라믄.”

 “네?”

 “아니 원래 주인 없으믄 쓸라 했는디, 주인이 나와브렀네.”


 일연은 정체불명의 사투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상황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옥 선생이 민규에게 말을 건넸다.


 “직접 마주친 건 두 번째인가? 마침 유 사장이 거의 다 고쳤다 하니까, 우리 집에서 저녁 한 끼하고 가져가실라우?”

 ”예……?“


 이때 민규의 뱃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꼬륵—. 꾸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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