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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로 Jul 30. 2024

여름. 402호.

준영의 주말 야근

 늦은 밤. 서울의 으리으리한 빌딩 숲을 열 몇 시간만에 탈출한 준영은 반은 걸어서, 반은 버스를 타고 — 사실 버스 정거장에서 대부분은 걸어서 — 나눔아파트 502동 404호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기 전, 준영은 문득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과 그를 돌보러 같이 간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휴대폰으로 아내의 연락처를 간신히 찾고는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준영은 관두기로 했다.


 준영은 안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고, 하루의 중압감을 담배와 함께 태워 보냈다. 연기는 춤을 추듯 하늘 위로 올라가고, 준영의 눈길은 그와 반대로 힘없이 땅에 꽂힌다. 어느새 돛대만 남았다.


 “후—. 이거 참. 애 엄마가 알면 난리 나겠네.”


 준영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의 유수한 대학교를 졸업하고 남들보다 일찍 결혼하여 가정도 차리고, 대기업 T상사의 기획팀 대리로 일하고 있다. 언젠가 회사에서 말한 대로, 미국 본사로 발령이 나서 가족과 풍족하게 살 것을 기대하는 그도 자신의 그런 쓸쓸함을 모르지는 않지만, 가장의 무게감이 오히려 준영의 외로움을 짓누르고 준영의 발걸음을 밀어올린다.


 오늘따라 그의 흡연이 길다. 천천히, 또 신명나게 올라가는 담배 연기는 달빛을 가리기 시작한다.


 툭—. 투둑. 투욱—.


 난간에 걸쳐 있는 준영의 손등에 차가운 빗방울 하나가 내려 앉는다. 이내 소나기가 짙게 드리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현관문을 열고, 가장의 무게에 짖눌려 풋잠을 청한다. 그러나 야근과 주말 근무로 카페인과 니코틴에 절여진 준영에게 잠은 제대로 올 리가 없다. 방 안, 디지털 시계의 깜빡거리는 푸르스름한 빛만이 준영를 비춘다. 준영은 수면유도제 몇 알을 삼키고 나서야, 억지로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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