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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Jun 22. 2024

삐빅-열폭버튼이 눌렸습니다[5]

마치 작가라도 된 마냥

오랜만에 비가 온다.

아이들은 학원 보강을 들으러 가고 남편은 운동하러 나가 고요한 집.

혼자 앉아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또 작가병이 도진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작가 라는 말을 쓰기도 부끄럽지만)

한창 소설을 쓰다가 라이킷 10을 넘기지 못하는 현실에 다 삭제해버리고,

또 돌아와서 일기 같은 글들을 쓰다가 일주일만 지나도 다시 못 읽을 지경으로

수치심이 밀려와 다 삭제해버리고,

한동한 뜸하다가 결국 나의 브런치는 이렇게 고독하게 사라지겠구나 싶은 마음에 썼던

<브런치 고독사 포비아> 가 관심을 조금 받아 그 힘으로 다시 글을 조금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인기 작가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약간 높아지는 라이킷과 조회수에도 힘이 나는 걸 보면 어쩌면 나는 관종일까?

조용하고 소심한 관종.

비만 오면 나와서 꿈틀거리는 길바닥 지렁이처럼

오늘도 관종끼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그런 날인가보다.


주로 불안을 잠재우려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글로 남겼었는데

최근엔 인간관계 아니 인간혐오,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 정치적 이슈, 지진, 북한 오물풍선 긴급재난문자 등으로 불안이 아주 극에 달했다.

별일없잖아, 머릿속으로 반복하면서도 가슴 저 아래에서 욱씬욱씬 올라오는 불안은 늘 나를 괴롭힌다.

나는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스스로 성인 ADHD라고 거의 확신하는데,

어제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1초 간격으로 넘기다가 어느 인플루언서(ㅊㅁ)의 스토리에서 아래와 같은 글을 봤다.


내가 할수 있는 일에 집중해보는거 어떠세요.
지금 할수 있는일, 할수 없는 일 나눠서
할 수 있는 일 다 하시고 그이후에
할수 없는 일에대해 생각이든 후회든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이 원래 그게잘 안됩니다.
그래서 후회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저도 그래요.

그런데 안되더라도 자꾸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하면
조금씩 됩니다.

힘내봐요 우리


멋있어.


나보다 훨씬 어리고 띄워쓰기도 틀린 그녀의 문장들이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완벽히 띄워쓰려 집착하여 써내려가는 나의 글을 읽고 좋아해주는 사람은 열명 남짓,

비록 띄워쓰는 건 틀렸지만 진심이 담긴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려 66만명.

어쩌면 띄워쓰기를 잘 지키려는 것도 맞춤법을 틀리지 않으려 발악하는 것도 지적으로 보이고 싶은 허세인 것 같다.


그녀보다 학벌이 높다고, 나이가 많다고, 영어를 더 잘 한다고, 조금 더 예쁜 구석이 있다고 꼴같지않게 우쭐거리던 나 참 초라하다.

당당히 나서지도 못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하던 내가 더 초라하게 저기 어디 지하 100층 200층 정도로 꺼진다.


돈도 잘 벌고 점점 더 예뻐지고 영어실력도 일취월장에 나이가 들면서 연륜도 쌓여가는 그녀가

글까지 잘 쓰다니, 세상 참 불공평하지.

저런 사람도 본인이 책을 낼 정도는 아니라고 겸손을 떠는데... 불안을 잠재울 문장 한 줄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고 브런치에 입문한 스스로가

수치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러나저러나 그녀 덕분에 불안이 조금 가라앉았으니 다행이다.

초라해지긴 했지만 담담하게 또 마음을 이렇게 써내려가고 공개하려는 거 보면 어쩌면 나도 자존감은 좀 높은 걸까? 어쨌든 막연한 불안은 떨쳐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오롯이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한디.


돌고 돌아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그런 다짐의 일환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나를 괴롭히는 타인들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게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현재 열심히 하고 있는 운동과 식이요법 이상으로 건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하물며 정치적 이슈? 지진? 북한 오물풍선? 그런 문제들을 막기 위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한낱 대한민국 아줌마로서 내가 영향력있게 할 수 있는 거? 없다.

불안해한다고 달라질 수 있는 거? 1도 없다.

그저 관심을 가지고 투표 잘 하고 뉴스 재난문자 켜 놓는 정도랄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고요하게 빗소리에 집중해본다. 글을 올리고 몸을 움직여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아이들과 남편이 오면 먹을 맛있는 점심식사를 준비해야지.

그리고 저녁에는 요가를 해야지.

내게 맞는 운동이 있다는 것,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

편안한 마음으로 빗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주말에 푹 쉬고 월요일에는 몸을 움직여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사실.

게다가 기다리는 넷플릭스 시리즈와 또 기다리는 예쁜 옷 택배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아야만 한다.


명품 가방, 명품 시계, 해외여행, 그리고 대박 작가.

그런 풍요로운 삶에 대한 갈망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현재와 건강,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에 집중해야지.




그렇게 부와 재능과 미모와 풍요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열등감을 다독여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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