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교차로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소 그 길에는 경찰이 없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경찰들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한다. 워낙 신호체계가 복잡하고 교통량이 많은 지점이다.
내가 불안증이 있어 유독 그렇게 보이는지 몰라도 달리는 차들 가운데 맨몸으로 서서 교통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통 위험해보이는 게 아니다. 출근길이나 퇴근길이나 워낙 마음이 바쁜 시간대다. 차만 봐도 급한 마음이 느껴진다. 신호가 바뀌기도 전부터 주춤주춤, 신호가 끊길 것 같아도 악착같이 꼬리를 무는 차들이 천지다. 그런 조급한 마음들이 교차하는 혼돈의 정점에서 경찰들이 수신호로 오가는 차들을 정리한다. 쌩쌩 지나가는 차들을 불과 1-2센티 차이로 피해가며 말이다.
꽤 아슬아슬한 장면을 자주 보는데 오늘도 그랬다. 신호가 끊기기 직전인데 지나가려는 차와 그걸 저지하는 경찰 사이 찰나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나는 기어코 지나가려는 차의 바로 뒤에 있었는데 차 트렁크에서도 앞차의 분노가 느껴졌다. 부릉부릉 확 나가려는데 경찰이 몸으로 막아서니 차마 치고 지나가지 못해 끓어오르는 분노.
경찰의 호각 소리와 물러나라는 격한 손짓에도 앞차는 주춤주춤 앞으로 계속 나갔다. 어차피 직진 차량들이 신호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해 못 지나가는 상황인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차를 막아선 경찰의 등 뒤로 직진 차량들이 쌩쌩 지나가기 시작했고 경찰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오지 말라고, 템포가 빨라진 호각소리가 그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그때 앞차 운전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뭐 식상한 장면들,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는 운전자와 그에게 욕 한 마디 할 수 없는 입장의 경찰.
간만에 인간혐오가 올라왔다. 마음이야 이해한다. 10초 차이로 지각해 상사에게 깨질 수도 있지, 1초 차이로 못 받은 신호 때문에 중요한 회의에 늦을 수도 있지.
그래도 차에서 내리지는 말아야 했다. 차 안에서 어떤 욕을 하든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치든 그거까진 상관없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는 경찰은 물론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에도 오물을 투척해버린 거다. 앞차의 옆차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더니 한 마디 하는 게 보였다. 그만 하시라고, 딱 한 마디. 물론 앞차 운전자는 신호가 바뀔 때까지 멈추지 못하고 나와 나의 뒷차들이 수차례 빵빵 거릴 때까지도 경찰을 잡았다. 출근이 그렇게 급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경찰의 얼굴을 주먹으로 칠 것처럼 몸을 들이밀고 침이라도 뱉을 듯 가래를 끓어올렸다. 끝까지 전봇대를 발로 차고도 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 쒹쉭 거리며 차에 차던 그의 모습이 출근한 지 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지나치며 본 경찰은 너무 지친 표정이었다. 호각 소리도 아까보다 힘이 빠져있었다.
오늘의 열등감은 창문을 내리고 그만하라고 하던 앞차의 옆차 운전자에 의해 건드려졌다. 나는 무채색 사람이다. 어디를 가도 알록달록한 사람들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나를 감춘다.
당연히 앞차 운전자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칠 용기 따위는 없었다. 그 순간 앞차 운전자가 트렁크에서 망치를 꺼내는 장면까지 상상한다. 지나치며 창문을 내리고 경찰에게 고생 많으시다고 하지도 못했다. 가뜩이나 속상할 경찰에게 고생 많다는 소릴 하는 게 과연 배려일까 수십번은 고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 그리고 이렇게 궁시렁거리는 정도. 그래도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 나는 사실 궁시렁대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마치 아침의 그 경찰처럼 내가 나의 자리에서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 비난 받은 경험이 있다. 힘 빠진 호각소리에 꾸깃꾸깃 구겨진 건 나의 감정은 결코 열등감이 아니었다. 그건 공감이고 앞차 운전자의 무례에 대한 분노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앞차의 옆차 운전자처럼 당당하게 분노하지 못했을까? 왜 눈짓으로라도 경찰에게 공감과 격려를 표하지 못했을까? 그건 분명 소심하고 당당하지 못한 행동이었고 자연스레 열등감으로 이어졌다. 앞차 운전자 같은 인성 똥쟁이들이야 종종 본다. 하지만 앞차의 옆차 운전자 같은 사람은 사실 드물다.
열등감은 나보다 못난 사람이 아닌 나보다 잘난 사람에 의해 건드려지는 게 확실하다. 무식한 앞차 운전자보다 창문을 내리고 그를 꾸짖던 앞차 옆차 운전자가 오전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불편해야 한다. 불편하고 또 불편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조금은 덜 부끄러운 사람이 될 수 있겠지. 조금은 더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말만 하면 득달같이 두들겨 맞으며 살아서
옳은 걸 옳다고 말하는 것조차 두렵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다,
조금 뻔뻔해지는 연습.
무채색이라도 괜찮아.
다만 목소리는 내며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