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老華)

by 윤성

누런 햇살이 늘어지던 오후

공원에서 만난

늙은 장미


찬란했던 기억을 놓지 못한 채

늙어간다는 건

어찌나

서글픈지


피처럼 붉던 꽃잎은 누렇게 변했지만

촉촉하던 꽃잎은

파사삭 말라비틀어졌지만

당신은 착각하고 있었네

여전히

싱그럽다고


당연한 일이다

알맞은 계절에 한껏 싱그러웠던 순간들을

어찌 쉬이 잊을까

얼마나 예뻤을까

쨍하니 붉고

적당히 촉촉했을 꽃잎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적 없었다면

노화(老化)가

덜 벅찼을지


이제는 아무리 이슬에 몸을 적셔도

눈부신 볕을 받아도

결코 예전 같을 수 없는데

여전히 이슬을 찾아

볕을 찾아

지치기 쉬운 몸을

이리저리 돌리려 애쓰는

늙은 장미


가련한 마음이

시린 눈가에 스친다

건조한 입가로 힘주어 파고든다


그런 노력으로

여전히 싱그러울 수 있다고 착각하는

지금이

행복할까

글쎄

그건 가짜잖아


시간이 흐르면 기어코

알고 말 것을

방긋 웃기만 해도 온 세상이 녹던

그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네


그러니 이제

찬란했던 기억을 놓아줘야 할 때

가끔 떠올려

미소 지을지언정

더는

애쓰지 마


어차피 세상에는

제대로 된 거울이란 것도 없잖아


싱그러워 보이기 위해 이슬을 머금지 말고

예뻐 보이기 위해 볕을 쪼이지 말고

그저 이슬이 좋아 머금고

볕이 좋아

쬐고


꼿꼿하렴


그럼 행복하잖니

그럼

이 시절도 알맞은 계절이 되지 않겠니


그럴 수 있다면

공원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한껏 싱그러운 꽃들과 사진을 찍더라도

나는


늙은 장미

당신의 옆에 서겠네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했어도

여전히 이슬이 좋고

꽃잎이 말라비틀어졌어도

그저

볕이 좋은


당신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나는

꼭 당신과

사진을 찍겠네

누런 햇살이 늘어지던 오후

공원에서 만난

늙은 장미


그녀가 그렇게

나랑

사진을 찍었네


눈부시게 아름답노라

내게

말하며

그저 이슬이 좋아 머금고

볕이 좋아

쬐고


꼿꼿하라고


한순간 늙어버린 나의

귓가에

속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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