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이억이 넘는 틀이 존재하는 세상
누구나
자신의 틀을 가지고 산다
한때는 바글바글한 틀 사이에서
나랑 같은 틀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딱 들어맞는 누군가를 만나면
한없이 기뻤고
의지했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틀 사이에서도 틈은 발견되었다
예외란 없었다
얼핏 나랑 같아 보이던 틀도
오래 맞추며 지내면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기어코 어느 부분이 어긋나고 말았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그리고 삐걱삐걱- 소리 후엔
어김없이 들어야 했던
비난
너의 틀은 틀려, 는 차라리 나았다
그건 무시가 쉬웠으므로
쉬이 지나칠 수 없었던 건
넌 우리랑 틀이 달라, 라는 말로 버려졌던 나날
소름 돋게 외로워
결국 무너졌던 수많은 나날
틀이란 게 마치 지문과도 같아서
모두 다른 게 당연한데
그걸 몰랐다
모르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길었던 방황의 끝에서 더는
헤매지 않기로 한다
더는
상처받지 않기로 한다
팔십이억이 넘는 틀이 존재하는 세상
나랑 같은 틀은 애당초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이해하고
살기로 한다
살아내기로 한다
나의 틀에서 나온 무언가조차
시간을 입고 마모하면
결국 틈이 벌어지고야 마는 것도 이제는
알겠다
그러니 나는
나를 믿고 갈 것이다
부끄러운 희망으로
기어코 허무하게 매듭지을 절박한 마음으로
나의 틀을 구태여 남과
견주어보지 않고
그저
나를 믿고 갈 것이다 덤덤하게
오로지
나만 믿고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