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집
수도꼭지에서
조르륵
떨어진 물방울이
폭포가 되어 온몸을 덮칠 때가 있다
끈적한 폭포다
가족 누군가의 도어락 누르는 소리로도
친구에게 걸려 오는 전화 소리로도
떨쳐낼 수 없는
끈적한
불안
끈적한 기운이
목구멍을 막고 올라 차면 숨조차 쉬기 벅차 기어코
울부짖고 마는
어린
영혼
그런 날은
일부러 일을 망친다
일부러 체증이 심한 길을 택하고
흰옷 차림으로 벌건 음식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시시한 문서의 오탈자를 보고도
그냥 결재를 올리고
기한을 코 앞에 둔 업무를 외면한 채
종일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얼른 답해야 하는 연락을 질질 끌기도
일회용 렌즈의 주문 시기를 일부러
놓치기도
카페에서 제일 시끄러운 무리의 옆자리에 앉아 보기도 하는
일탈
기이한 심술들로 채워보는 일상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제야
퉤
뱉어내는 끈적한 숨
일을 망쳐도
내가 망하는 건 아니라는 안도
결코
삶이 망하는 건 아니라는
보송한 안도
마치 운동으로 멀쩡한 근육을 찢었다 붙여야
더 단단한 근육을 얻듯이
어린 영혼은
그렇게 뻔뻔해지는 연습을 한다
숨
쉬기 위해
그리하여 어떤 징조도 되지 못할 물방울이
조르륵
수도꼭지에서 떨어져
별일 없이 하수구로 흘러가는 걸 지켜본다
아무렇지 않은 척
능청맞게
숨
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