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조금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by 윤성

낑낑- 묵직한 소금 포대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오후


짜고 눅눅한 몸을 침대에 뉘고

손가락만

살아


지인의 여행 사진을 감상한다


프랑스 화가의 그림에서 본 듯한 마을

유리보다 맑은 호수는

세월이 공들여 깎은 산의 풍경을 고스란히 비추고


다채로운 빛깔의 주택에는 텃밭들이 딸렸다

그리고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맛있는 연기


낡은 현관에서 홀로 죽어간 나의 할머니는

아마도

저런 곳을 꿈꾸었겠지


두 개를 들었다가 하나는 내려놓고 산 빵 하나를

나와 동생에게

헌 가위로 잘라주던 손


상처로 수축하고 얼룩이 가득했던 그녀의 손등을 떠올리며

나는


지인의 여행 사진을 감상한다

딱히 자랑도 아닌,

그에게는 그저 일상 같은 여행을 훔쳐보는

쓸쓸한

오후


심장이 가라앉는다

횡격막을 지나 배꼽보다 아래로 점점 무겁게

무겁게


무겁게 하루가 저문다


이윽고 어둑해진 길을 따라

하나둘씩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찌개랑 묵은 밥으로 차려 먹는 저녁 밥상

반찬은

멸치볶음이 전부지만

그래도

나도 사진을 찍는다

묵은 밥도 맛이 괜찮아서

멸치볶음이 적당히 쫀득하고 바삭해서


자박자박 찌개 국물에 밥 비비는 소리가

무겁기만 하던 하루를 마모시키고


영문도 모른 채 서로를 토닥이는 눈빛이

쓸쓸했던 오후마저 녹여버려서


지인의 일상 같은 여행처럼

내겐 일상인 저녁 한 끼를 사진으로 남긴다


언젠가 아이가 행복이 무어냐고 물으면

꺼내서

보여주려고


따뜻한 냄새가 묻은 사진을 한 장 남긴다

어디에도 올리지는 않는다

낑낑- 묵직한 소금 포대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누군가의 오후를

쓸쓸하게 만들까 봐


딱히 자랑도 아닌,

수수한 저녁 한 끼라도

그게 간절할 어떤 이를 조금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사진첩에

그렇게 쌓아만 둔다


느려도

차곡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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