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궁지에 몰리는 순간이 있잖아요. 오늘이 그런 날이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날이 서 있었고,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사람이 실은 나를 굉장히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업무상 그 사람의 컴퓨터를 써야 해서 허락을 받고 들어갔는데 다른 부서 직원과 나의 험담을 한 대화창이 화면에 띄워져 있더라고요. 컴퓨터를 쓴다고 하니 너무나 흔쾌히 허락하던데 나는 나를 믿어서 그런 줄만 알았지 뭐에요. 게다가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갑상선과 부인과 검사에서 세 가지 항목이나 재검이 떳고요! 매번 순조롭게 진행했던, 그래서 전혀 부담이라고는 없었던 업무가 갑자기 난관에 부딪혔죠. 와중에 남편과는 아침부터 시댁 문제로 언성을 높였고, 오후에는 아이가 학교에서 발목을 접질렀다는 연락을 받아 하던 업무를 모조리 쌓아두고 학교로 달려가야 했답니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도착한 병원에서 아이를 업고 응급실로 X-레이 촬영실로 움직이는데 머리에서 삐- 고장음이 울리더라고요. 병원만 아니면 시원하게 소리라도 지를텐데, 혼자라면 주저 앉아 펑펑 울기라도 할텐데, 친구가 있다면 연락해서 술 약속이라도 잡을텐데...... 그럴 수 없었어요. 나는 친구가 없거든요. 그런데요, 가끔 예상조차 못한 대상으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가 있다는 거 알아요? 오늘 그랬어요. 목구멍으로 올라차는 무언가를 꾸역꾸역 삼키며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는데 청소하시던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갑자기 등을 쓸어주시더라고요. 애기엄마 치마 다 딸려 올라갔다, 하며 말려 올라간 치마도 아래로 잘 내려주시고요. 그 때 누군가 열어둔 병원 창문으로 바람이 살-랑 들어와 땀으로 젖은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어요. 정말 기분 좋은 바람이요. 가을을 머금어 온도도 습도도 완벽한 그런 청량한 바람이요. 이보다 더 완벽한 응원이 존재할까요? 그래서 오늘도 조금 미지근하게 고백하고 싶었답니다.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고요. 오히려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는 결코 받을 수 없을 위로를 가끔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고는 해요. 또 사람에게 받을 수 없는 격려를 자연으로부터 받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당신도 버티면 좋겠어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도 세상은 당신을 응원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그래요. 내가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응원하고 있어요. 얼굴은 모르지만요, 나 지금 당신의 등을 쓸어주고 있어요. 또 어디선가 살-랑 들어오는 가을 바람도, 알알이 수분을 머금고 소분된 달콤한 머루포도도, 알록달록한 가을 잎들을 반짝이게 하는 햇살도,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도 모두 당신을 격려하고 있잖아요. 버텨내서 살자고, 살아내자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