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만큼 비가

by 윤성

비에는

그리움을 자극하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아파트 현관에 걸터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오후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보도블록 위에 도장 찍는 풍경을

바라본다


같은 자리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기다리지만

어째 모두 다른 자리로

떨어진다


아슬아슬하게


모두 다른 자리로 떨어져서

거리를

짙게

점점 더 짙게

채색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바라보며 앉아있어도


이미 지나가버린 무언가처럼


마음 속 같은 자리로는

결코 다시 알아차릴 수 없을 것만 같던 감각을

자극하며


비가

거리를 채색하고 있다


어린 시절 시장에서

한 손에 무거운 장바구니를 몰아서 들고

다른 손으로

내 말랑한 손을 꽉 잡던

엄마 손의 촉감


그런 엄마와 소리 지르며 다투고

울고 있을 때

찬찬히 내 등을 토닥이던

외할아버지의

주름진 손길


퇴근길 비를 쫄딱 맞고 와서 덜덜 떨면

할머니가 우려주던 보리차의

따끈한 온도


당신과 처음으로 함께 우산을 썼던 날

피하려 애를 써도 자꾸

몸이 스칠 때

당신에게서 나던

보드라운

냄새


당신과 함께 듣던

턱수염이 산적 같던 가수의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우리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우리의 신혼집에 들렀다가 가던

당신의 어깨를 괜히 한 번

꽉 잡고

돌아서 가던 친정 아빠의 뒷모습


첫 월급으로 내가 사준 감색 셔츠가

닳을 대로 닳아

그 쪼그라든 체격에 할랑거리던

아린 뒷모습까지


세상 모든 그리움을 자극하며

비가 내린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바라보며 앉아있어도


같은 자리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게

딱히 싫지는 않다


이미 지나가버린 무언가처럼


새로운 무언가가

또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다

따뜻하고 보드랍고 감미로운 무언가가 또 다시

내게 오리란 걸

이제는 안다


비에 포함된

그리움을 자극하는 성분은 아마도

세로토닌을

촉진시키나 보다


이토록 그리운 만큼 비가

내려도


마음이 춥지 않은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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