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없는 섬

by 윤성

버려진 꿈들이 모인 섬을 안다


빛바랜 미련

대상 모를 원망

오래전 식어버린 집착과

결코 가볍지 않을 실망 따위가

뒤섞인


누군가 좇다가 버린 꿈들은

모두 그 섬에 모여있다

인적 드문 그곳에


모여서

살고 있다 영원히


할머니가 꿈꾸던 작은 텃밭이 딸린 집도

그 섬에 있다

낡은 아파트 현관에서 홀로 죽어 간 나의 할머니


일이 잘만 풀리면 공부를 더 시켜주겠다던

아빠의 꿈도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리하여 작은 텃밭이 딸린 집을 선물하고 싶었던

나의 꿈도 그 섬에

아마도 그녀의 작은 텃밭 근처에 아주 예전부터 자리 잡았다


예고 없이 멈추어버린 누군가의 꿈들을 떠올리며

숙연해지는 밤

나는

어김없이 그 섬을 향한다

신발은 신지 않는다


누군가 떠나고 싶었을 여행

누군가 열망했을 직업

간절한 한 끼

사람


그 섬에는

할머니의 텃밭도

사업에 성공한 아빠도

아늑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도 존재하지만

온통


흑백이다


거대한 흑백의 향연 속에서

나는

그저 걸을 수밖에 없다

밤새

걸을 수밖에

발바닥의 살갗이 다 벗겨져도 차마

멈출 수 없다

보잘것없는 눈길이더라도

감히 어떤 위안이 될까 싶어서

혹은

어떤 의미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에 난도 당한

가련한 마음들을

바라보며

걷는다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 꼭 이뤄질 거라는 희망에

오랜 세월

거칠게 잡아 뜯긴 삶들을 바라보며

아프게 바라보며 나는

걷고 또 걷는다

모두에게 버려진 꿈들을 나라도 기억하고 싶어

새벽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걷는다


그래도

다 걷지 못한다


버려진 꿈들이 모인 섬이

버려지지 않은 꿈들이 모인 섬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너무도

늦게 알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조금 덜

울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내일은 볼 수 있을까

색깔을


버려진 꿈들도 저마다의 색을 띤다는데

하여 그 섬도 실은

꽤 다채롭고

아름다운 섬이라는데


아직 내 눈에는

색이 없는 섬일 뿐


몇 번이나 더

그 섬을 향하면 볼 수 있을까

얼마나 걷고 또 걸어야

볼 수 있을까


할머니의 작은 텃밭이 띠는

싱그러운

초록을


꿈꾸던 순간 오색찬란했을

누군가의

색깔을


버려진 꿈에도

스쳤을

결코 옅지 않게 스쳤을


알록달록한

흔적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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