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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Mar 25. 2024

나의 손절이야기 [1]

왜 자꾸 버려질까?

제목만 보면 내가 누군가를 손절 ‘친’ 이야기들이 나올 거 같지만,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이야기는 살면서 내가 ‘당해온’ 무수한 손절들에 대한 이야기다.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려졌던 이야기.



손절,


이라는 단어만 봐도 후두둑 눈물이 흐를 때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려지는 느낌은 몇 번을 겪어도 적응이 어렵다.

사람 만나는 걸 극도로 꺼리는 I 성향이 짙으면서도

자꾸만 사람이 고프다.

만나고 손절 당하고 친해졌다가 절교 당하고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사귀고 차이고......

시절인연 이라는 말을 알기 전까지는

그 모든 과정이 나의 잘못이라 자책했다.

뭐 지금도 여전히 진실은 모른다. 내가 성격이 모난 건지, 그저 다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며 사는 건지.

다만 자책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이기적이고 누굴 따뜻하게 챙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F처럼 보이지만 T중에서도 쌉T라 공감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이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며칠 전 좋아하는 언니한테 예쁜 뜨개가방을 선물 받았다.

명품가방보다 더 예쁘고 한올한올 언니의 손길이 닿은 그 가방이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고마운 마음을 밥으로 갚으려 했는데

언니는 요즘 인간관계로 지친 나의 마음을 안다며 그 조차 거부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친구가 많은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할까?

그저 언젠가 언니가 읽고 싶은 책을 선물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

마음 한 켠으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이러다 또 버려지면 어쩌지?



이런 불안은 아마도 지금껏 내가 당한 손절의 역사에서 비롯되겠지.

처음 당한 건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우리집에서 1분만 걸어가면 닿는 집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걔는 내가 좋다며 학교에 같이 가고 집에 올 때도 꼭 같이 오길 바랐다.

나는 가끔 혼자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했다. 너랑 같이 이야기하는 게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혼자 다니고 싶어.

그리고 바로 손절당했다.

이후 친구는 나랑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언제부턴가 다른 아이들의 귀에 대고 나를 보며 “쟤 되게 재수없어." 를 반복했다.


또 고등학교에 입학해선 3년 내내 붙어다닌 친구들이 있었다.

나 포함 넷은 수업이 끝나면 레코드 가게에 가서 같이 음악을 듣고,

노래방에 가서 샤우팅을 하고, 근처 카페에서 파르페나 토스트 따위를 사먹기도 했다.

어떤 주말엔 누구의 집에 모여 밤새 영화를 보고 아침에 일어나 다같이 라면도 끓여먹고,

넷 모두 반이 달라지고도 하루가 멀다하고 교환일기를 써 쉬는 시간마다 서로의 반으로 교환하러 다녔다.

이들과는 대학 1년때까지도 연락을 했다. 하지만 이후 멀어졌다.

정확히는 나만 그들로부터 멀어졌다.

넷중 유일하게 서울로 대학을 왔던 나는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살게 되며 우울증이 심해졌고,

몇달간 그들의 연락이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구렁텅이에서 기어나와 연락을 취했을 땐 이미 손절 절차가 마무리된 후였다.

그들 셋은 서로의 결혼식도 아기들의 돌잔치도 축하하며 늙어졌겠지?


그 무리와 별개로 또 친하게 지내던 고딩 시절 친구가 하나 더 있다.

이름과 얼굴도 아직 또렷하게 기억나는 그 친구,

걔랑은 성적도 비슷하여 심화반이라는 야간 자율학습반에 함께 속했었는데 지치면 아무도 몰래 둘이 운동장에 누워 한참 밤하늘을 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길 나누기도 했고, 문 잠긴 체육관의 문틈으로 몸을 구기고 들어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마음을 많이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도 대학에 들어가며 연락두절.

언젠가 서울 길바닥에서 우연히 만나 너무 반가워하며 폰 번호를 물었더니 자긴 폰을 두고 나왔다면서 내 번호를 자기 손바닥에 적어달라고 했다. 그러고선 꼭 연락하겠다며 날 꽉 안아주고 갔고 그 다음 날 새벽까지 연락을 기다렸지만 역시나 아무런 연락도 없었지.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날 걔 주머니에는 폰이 있었을 거라는 사실.


대학시절 모든 걸 공유했던 친구들은 내가 남자친구 욕을 하면서도 그 남자친구를 계속 만난다며 손절했고,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에서 친해진 언니들은 나의 외모와 옷차림을 수시로 평가하기에 하루는 용기내어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때부터 투명인간 취급.

첫 직장에서 가깝게 지낸 동료 두 사람은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마냥 혼자 사는데 잘 챙겨먹으라며 반찬까지 바리바리 챙겨주더니 어느 날 정치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발끈, 손절. 동호회에서 만난 여덟 명의 남녀는 마치 평생 갈 인연인 것처럼 매일 연락하고 이틀에 한번 꼴로 만났지만 어느 날 저녁, 회장이 제안한 식당이 주차가 어려워 보여 딴데 가자고 했다가 나 빼고 모두 톡방에서 퇴장하고 손절. 조리원 동기모임 아줌마들은 애들 크면 부부 동반으로 캠핑이나 다니자 꺄 좋아 5년 넘게 유난을 떨더니 내가 시아버님 직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핑계로 슬슬 시비 걸다가 따로 단톡방 파서 손절. 어린이집 같은 반 엄마들은 남편들을 두고 하는 야한 농담에 내가 함께 까르르 웃지 않고 도도한 척 한다며 나만 빼고 브런치카페며 키즈카페며 다니더니 길에서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손절.


더 쓰기도 귀찮다. 정말 많다. 새록새록 기억이 떠오를 수록 나는 정말이지 수십번도 넘게 버려지고 상처받았구나, 스스로가 가엽다. 가족들 중에서도 엄마 빼고는 거의 손절 수준. 아빠도 오빠도 여동생도 저 성격 더러운 거 하루이틀이냐며 모이기만 하면 나의 뒷담화를 한다. 정말이지 너무 피곤하다. 인간관계 너무나 고되다. 어디까지 양보하고 얼마나 참고 얼마만큼 맞춰줘야 하지? 아니, 애초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안 맞으면 안 만나면 그만이지. 인생 어차피 독고다이, 죽는 순간 인간은 누구나 혼자잖아.


싫은 소리 들으면 정색하고, 헤어지라고 하는 남자친구라도 내가 좋으면 욕하면서도 좀 계속 만나고, 같이 신나서 욕하다가도 남편 팔짱끼고 장보러 나가고, 다 좋다고 하는 약속장소라도 나는 거기가 싫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닌지? 착하게 굴며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끄덕여주다가 딱 한번 도리도리하면 손절당하는 느낌인데 너무 상처가 심하다.



예쁜 가방을 만들어준 언니는 작년 초 내가 직장 상사 때문에 힘든 점들을 말했더니 내 편에 서서 육두문자를 뱉어가며 함께 상사를 욕해줬다. 그리고 최근 내가 그 상사의 자랑을 하며 눈치를 봤더니 귀신처럼 알아채고 불쑥 물었다.


- 너 왜 눈치 봐?

- 아니, 내가 그 사람 욕했었잖아. 근데 지금은 자랑을 하고 있네. 남자친구 욕해달라고 해서 실컷 같이 욕해줬는데 그 남자친구한테 프로포즈 받았다고 하면 드는 배신감 같은 거, 언니가 느낄까봐......

- 야, 사이 안 좋다가 좋아졌으면 너한텐 잘된 거 아니야? 배신감은 무슨? 난 네가 좋으면 다 좋다. 오전에 나 만나서 남편 실컷 뒷담화 까다가 오후에 부부가 팔짱끼고 장보면서 나 마주쳐도 눈치보지마. 우리라도 서로 눈치보지 말자.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인정하고 사이좋게 지내자.


 그래, 이렇게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 언니를 포함해 다섯이나 있다. 그 넷은 내가 언제 어디에서 불러도 달려와줄 사람들이다. 좁디좁은 인간관계 점점 더 좁아지는 중이지만 그들이 있어 괜찮다. 나는 아직 나를 버리지 않은 그들과 가늘지만 길게 갈 거다. 그리고 눈웃음 ^^ 하나 문자 끝에 찍는데도 긴 세월이 걸리는 나이지만 새로운 인연들도 올거라 믿는다. 확신한다. 나의 변덕, 이기심, 소박한 표현력과 콩알만한 배포 저 아래에 깔려있는 진정성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적어도 다섯은 더 있지 않을까?



글을 쓰다보니 답을 찾았다. 나는 왜 버려질까?


정답은 먼저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먼저 버렸어야 할 인연들이었다.


그래,

 

정말 괜찮은 사람들은 아직 나의 곁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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