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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Apr 01. 2024

나쁜 남자에 빠지면 답도 없지

연민마저 든다면, 게임오버

나쁜 남자,

감정이 태도가 되어 늘 내가 눈치보게 만들던 사람.

말로도 실제로도 폭력을 휘두르던 사람.

멀어진 게 벌써 언젠데 왜 아직도 시도 때도 없이 그 사람 생각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옷장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옷을 자주 사는 편은 아니지만 분명 작년 봄에도 봄옷들을 샀던 기억이 나는데 왜 입을 옷이 없을까?

그러다가 한때 자주 입던 옷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걸까 궁금해 기억을 더듬었다.


스무살 때 교복처럼 입던 흰색 폴라티,

소매 끝과 쇄골 라인을 따라 갈색 라인이 이어졌던 딱 붙는 라인의 그 옷은 어디로 갔더라?


그래, 버렸지.

겨드랑이에 누렇게 땀 자국이 나서 문지르고 락스에 담그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 세탁소에서도 지우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버렸던 기억이 난다.


또 레노마 패딩.

대학에 입학했을때 엄마가 백화점에 가서 사줬던 흰색 패딩. 모자도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고, 금장에 레노마 로고가 새겨졌던 그 옷은 어디로 갔지?

우리 형편에 나름 비쌌게 주고 사서 대학 졸업하고도 엄청 추운 날엔 꺼내 입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 그것도 생각해보니 버렸다.

생크림처럼 뽀얗던 흰색이 닳고 낡아 슈크림처럼 바래고, 모자를 탈부착하던 지퍼가 언제부턴가 뻑뻑하기도 해서 신림동의 어느 헌옷 수거함 넣었던 기억이 난다.

모자 떼어내고 그냥 입어도 괜찮았는데, 또 과탄산소다에 담가라도 볼 걸.

아빠가 추운 날 안에 얇게 입어도 그거 하나면 된다며 마이너스 대출 받아 사준 거였는데 너무 아깝다.

지금 생각하니 패딩이라 부피를 많이 차지해서 자취방 옷장 짐을 줄이고자 충동적으로 버렸던 것 같다.


핑크에 민트색 줄무늬가 있던 스트라이프 니트 셔츠도 버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시장에서 사서 포장까지 해서 생일선물로 줬던 건데...... 웜톤에 찰떡이라 겨울만 되면 꺼내 입었던 그건 또 왜 버렸더라? 그래, 소매 부분에 보풀이 일어서 버렸다. 보풀제거기를 샀으면 될 것을.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그것도 아빠가 같이 백화점 가서 사줬던 건데 버렸고, 까만 밍크모자가 달렸던 프라다 천으로 된 겨울 잠바도 버렸고...


아낌없이 퍼주었던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나는 왜 조금 더 생각하지 않고 버렸을까? 그래놓고 이제 와서 입을 옷이 없다고 왜 투덜거리고 있지?


언제부턴가 가족 단톡방에 아빠와 엄마의 안부를 물어도 아빠는 절대 대답하지 않는다. 사위 앞에서 쏘아대고 무시한 나의 언행에 삐친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


어떤 겨울, 분에 못 이겨 날 마당으로 쫓아내고 호스로 찬물을 뿌려대며 쌍욕을 하던 그 모습이,

어떤 여름엔 습기찬 마룻바닥에 닿았던 한쪽 뺨과 다른 쪽 뺨에 닿았던 아빠의 발바닥 촉감이 아직도 선명하니까.


가위로 내 귀를 잘라버리겠다던 목소리도, 나를 괴롭히던 같은 학교 아이의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듣더니 만사 귀찮은 얼굴로 걔는 쟤보다 귀한 딸일 거라며 마시던 소주잔을 털어내던 순간의 눈빛도, 욕을 내뱉을 때 미간의 주름도, 턱을 내밀던 표정도, 날마다 셀 수 없이 부라리던 눈빛들도 너무 선명하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 한때 사랑받고 자란 것처럼 보이고 싶어 팔짱도 끼고 다녀보고 연락도 자주 하고 이런 저런 일상 이야기들을 조잘대며 억지로 관계를 포장하던 때가 있었다. 남편과 만나기 시작하고 우리집에 인사를 드리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또 다시 임신을 했던 시기까지였던 것 같다. 친정에 머물다가 담배 냄새로 악지르고 싸웠던 그 날, 결국 새벽에 하혈하고 유산했던 그 지옥 같던 날, 아빠와 나는 돌아섰다. 끝까지 욕설을 내뱉고 물건을 집어던지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안하면서도 왠지 분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을 주체 못하던 표정도.


그 표정은 어느덧 폭삭 늙어 주름진 얼굴에 고스란히 자리 잡았다. 아빠의 사진을 보면 가만히 있어도 인상을 쓰고 있다.

불쌍한 사람.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그깟 기분 하나 다스리지 못해 미움 받는 사람.

사랑하는 아빠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사람.


아빠는 어린이날이면 공원에 데려가고, 처음 생리를 하던 날 장미꽃다발을 안겨주고, 비가 오면 학교에 데려다주고 눈이 오면 교문 앞에 차를 가지고 와서 기다렸으며,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나보다 더 기뻐하면서 싱글벙글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엄마는 철마다 예쁘고 시원하고 따뜻한 옷들을 사서 보내고, 아이를 낳고는 아이 옷들도 넉넉하게 사서 보내주는데 그 옷들을 직접 고르고, 박스 신문지로 두겹 세겹 포장하고, 우체국까지 직접 들고 가서 택배를 부치는 건 아빠다.

옷을 받을 때마다 가족 단톡방에 고맙다고 하지만 아빠는 읽기만 할 뿐 대답이 없다. 정말 나쁜 남자다.

봄밤 보송한 이불 속에서 또 저런 사람을 떠올리다니 나도 참 답이 없다.


미운 아빠가 사무치게 보고 싶은 밤, 여기에 글로 적은 이런 말들은 아빠에게 절대 하지 못한다.

아빠와 나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거리두기, 어차피 풀지 못할 관계 더 이상 서로 상처나 주지 말기.


그랴서 나는 그냥 아빠의 오늘밤이 행복하면 좋겠다.

아빠가 근무 중인 아파트 경비실이 오늘밤엔 평소보다 조금 더 아늑하고 떠뜻했으면 한다. 창밖으로 벚꽃잎이 흩날려도 좋다.

그게 딸의 마음인지 몰라도 된다.

암울했던 시절을 지나서도 남아있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꺼내놓지 못할 나의 이런 마음이 마치 발신번호가 제한된 전화처럼 어떤 형태로든 아빠에게 닿기만 하면 참 좋겠다.


아빠에게 앞으로 몇 번의 봄이 더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빠의 몸과 마음이 늘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편안하기를.

아프지 말고 외로워하지 말고,

엄마랑 최대한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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