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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Apr 16. 2024

힘든 마음에 칼질을 합니다

오늘의 칼질이 내일의 사포질이 되기를

홍진경 언니가 말했다.

행복이란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거라고.


예전엔 행복을 커다란 풍선처럼 생각했다.

크고 색이 알록달록 예쁜 풍선을 들수록 행복한 사람이라 여겼다. 여행, 비싸고 맛있는 음식, 부드러운 이불, 화려한 옷과 구두, 가방 등.


이제는 안다.

그런 걸 다 가져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예약하고 반년을 기다려 갔던 가족여행,

식사부터 이불, 욕조까지 모든 게 완벽했던 숙소에서

남편과 심하게 싸웠고 애들은 울고 지옥처럼 사흘을 보내고 온 적이 있다.

싸움의 시작도 별 게 아니었다. 내가 맛집을 검색하는데 애들이 자꾸 엉겨붙어 짜증이 났고,

화장실에 간 남편한테 빨리 나와서 애들 좀 보라고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똥도 마음대로 못 싸게 하냐며

수치심이 든다고 화를 냈다.


여행에서 돌아와 집에 와서 짐을 풀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남편과 화해했는데 서로 눈을 보며 이야기하다 웃음이 터진 그 순간 깨달았다.

홍진경 언니가 말한 행복의 의미를.

여행지에서는 너무 화가 나서 밤을 꼴딱 샜는데 남편과 화해를 하고 집 침대에 누우니 절로 잠이 쏟아졌다.

마음에 걸리는 게 없으니 집 조명도 이불도 따스했고,

결혼 망했다는 생각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여자는 머리털나고 제일 잘한 짓이 결혼이다 싶은,

세상 행복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역시 홍진경 언니는 천재야.

가진 게 아무리 많아도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행복할 수 없다.

모든 게 마음에 달렸다는 뜻이다.


요즘 자려고 눕기만 하면 온갖 생각들이 날 깨운다.

걸리는 게 너무 많다.

얼마 전 손절한 아는 동생의 연락.

아무것도 모른다며 업무를 모조리 떠넘기는 직장 동료,

일은 내가 다 하는데 여우 같은 동료만 떠받들고

나는 갈구기만 하는 상사.

뭔 이유인지 갑자기 내 인사를 무시하는 애 친구 엄마.

쿠팡 주문 어떻게 하냐고 여섯번째 물어보는 친정엄마.

애들 성적문제, 남편 월급, 대출이자, 전세이사 계획 등 끝없는 생각들이 눕기만 하면 머릿속을 채운다.


이래도 잘 거야? 생각할 게 이렇게 많은데 잠이 오니?

가지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땅땅 후려쳐서

도저히 잠들 수 없게 만든다.

심각한 문제들도 아니고,

당장 내가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아니다.

이성적으로 아는데 나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밤새 이제 그만하고 자라고,

마음에 걸어두고 고민해도 달라질 것 없다고 나를 다독이다가 날이 샌다. 아악!

자책도 필요없고 걱정도 무의미하다고 수십번 말해도

알아듣질 못한다. 도대체 왜 그래?

걱정한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지나친 걱정 때문에 방어적 태세를 갖추면

갈등이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병난다고 수십번 말했잖아. 근데 왜 그래? 생각 그만해.


사실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부터 버려야 옳은데 쉽지 않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는 쉽지.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글쎄?

지나가도 또 오던데?  겨우 뛰어넘으면 또 쇳돌이 굴러오고 그걸 뛰어 넘으면 또 저만치 굴러오는 쇳돌이 보이던데? 삶이란 게 원래 사방에서 굴러오는 크고 작은 쇳돌들을 뛰어 넘으며 사는 거라는 사실을 수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받아들여야 한다.

노력으로 모든 상황을 차단할 수는 없다는 걸.

여섯번 알려줘도 엄마는 일곱번째 쿠팡 주문하는 법을 물어볼 것이고, 애 친구엄마는 갑자기 내 인사를 무시하는 이유를 절대 말해주지 않을 거다.


그러니 바꿀 수 있는 건 결국 마음 밖에 없다.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아무것도 걸리지 못하도록,

뾰족뾰족한 마음을 동글동글하게 깎는 게 좋겠다.

휙휙, 누가 어떤 갈고리를 던져도 걸리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마음을 깎아본다, 동글동글 매끈매끈하게.

비록 오늘은 조각칼로 다듬지만

오늘의 칼질이 내일은 사포질만 되어도

덜 고될 것 같다.


마음이 둥글어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어제는 홍해인의 1조 클럽에 든것마냥 조금 더 마음이 여유롭고 행복한 사람들의 모임에 낀 것 같이

신났었는데......

이렇게 하루만에 무너지다니.

이토록 끝도 없이 세상이 날 괴롭히다니.


정말 만만치않다.

갈고리든 쇳돌이든,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서나 날아드는 게 삶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다.

사실 나도 못하면서 애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그거다.

쇳돌은 늘 그냥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거야,

엄마가 니들 앞에 서서 모든 쇳돌을 막아줄 순 없어.


행복하기 위해 중요한 건

그렇게 날아드는 갈고리와 쇳돌 속에서도 단단하고

동글동글하고 매끈한 사람이 되는 거야,

내 새끼들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되뇐다.

나 새끼도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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