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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Apr 28. 2024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송곳같은 세상

세상 모두가 송곳처럼 나를 찔러댄다.

오른쪽, 왼쪽, 위, 아래 온통 송곳들이라 하루종일 눈알을 상하좌우로 굴리며 찔리지 않으려고 눈치를 본다.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제는 정말이지,


가지가지 세상 사람들 눈치를 보다가 보다가 보다가 보다가 보다가,

엄마의 눈치까지 봐야 되나 싶었던 고된 하루.



엄마가 우리집에 와서 무생채를 해주다가

칼에 손을 벴다.

꽤 깊게 베어 피가 바닥으로 뚝뚝 흘렀다며,

그래도 맛있게 먹으라고

밥상에 무생채를 내어놓는 엄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놈의 무생채가 뭐라고......


엄마는 내가 자취하던 시절,

내 원룸에 와서 이불 빨래를 하고 냉장고 청소를 하고

출근 전 사과랑 마를 넣은 건강주스를 해주겠다며 미끄덩거리는 마를 썰다가 손을 벤 적이 있다.

괜찮다고,

빨래도 청소도 주스도 괜찮다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소용 없었다.

기어코 해주고 싶은 걸 하고

그 과정에서 또 그렇게 다친다.

그 날도 미끄러운 마 때문에 피가 많이 나서

수건으로 둘둘 손을 둘둘 둘러메고 엄마는 신림동에서 서울역으로 기차를 타러 갔다.

그 모습을 보고 출근하는데

출근길 지옥철에서 누가 보든 말든 펑펑 울었더랬다.


아직도 그 기억만 떠올리면 가슴이 아린데......


어제 무생채 때문에 또 사달이 난 거다.

무생채가 뭐라고, 누가 먹고 싶다고 했냐고!

내가 기침을 컹컹 하는 게 걸려서 무가 감기에 좋으니까 했단다. 속이 터진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싫은 소리를 몇 마디 했더니

엄마도 참다가 짜증을 버럭낸다.


"짜증나게 하네, 정말!"


그 한 마디가 나는 또 서럽다. 눈치가 보인다.

직장 상사, 동료들, 애 친구 엄마들, 애 학교 담임 선생님과 여러 학원 선생님들에 아랫집 수험생까지...

세상에 눈치 볼 사람 천지인데

이 버거운 세상에 부모 눈치까지 봐야하다니,

원망스럽다.

제발 내게 저 사람이 불쌍해보이지도,

야속하게 보이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너무 불쌍하고 참 야속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늘 엄마가 불쌍했다.

키 150cm 작은 몸뚱이가 부서져라

하루종일 요리를 하고 살림을 하고,

코딱지만한 집이 조금이라도 예뻐 보이도록

무거운 가구들을 번쩍번쩍 들고 날랐다.

그러느라 늙었고 나 몰래 큰 수술도 두 번이나 받았다.

내가 10개월을 있다가 나온 엄마의 자궁은 이제 엄마 몸에 없고 내 몸에는 있는 맹장도, 게실도 엄마의 몸에는 없다.

그런 엄마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우울해지고,

마음이 저 아래 밑바닥까지 가라앉는다.

아빠에게 제대로 대접 받지도 못하면서 다 퍼주고,

부자 친정에서 자라놓고 가난한 아빠를 만나

환갑 넘은 나이까지 일하는 엄마가 너무 짠하다.

그래서 내 삶의 목표들 중 하나는

불쌍한 엄마가 되지 않는 거다.

생각하면 행복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짠한 마음 심어주지 말자고,

남편에게도 늘 말한다.



엄마는 본가로 내려갔고

나는 엄마 피가 섞인 무생채에 계란프라이를 올려

비빔밥을 해먹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착 가라앉는 일요일 아침,

벌써 여름이 온 건지

아침부터 볕이 뜨겁다.


아무렇지 않게 전화했더니,

또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오늘은 미용실에 파마말러 간다며 신이 난 엄마.


휴.


오늘 엄마의 파마가 탱글탱글,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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