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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Apr 27. 2024

무채색 C군의 어떤 하루

짧은 소설


엄마는 열시가 되어야 집에 온다.

새벽에 집을 나가 오후 세시까지는 청소용역 업체에서, 이후엔 열시까지 옆 동네 아파트 몇동 몇호에서 갓난 아기 돌보는 일을 한다.


아빠는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


오늘은 공개수업을 했지만 엄마는 당연히 학교에 오지 못했다. 한창 일할 시간이고, 하루 빠지면 하루 수당이 날아간다. 그러면 관리비나 내 태권도 학원비가 밀릴 수 있다. 수당을 놓치지 않으려면 엄마가 주말에 하루 더 일해야 하는데 주말만은 나도 꼭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


어쨌든 공개수업에 엄마가 오지 않은 건 나뿐이었다.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서러워 책상에 엎드려 울곤 했는데 오늘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았다. 엄마가 보낸 문자 덕분일까?

아침에 일어나 엄마가 꺼내놓고 나간 떡을 먹는데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 아들, 엄마 오늘 못 가서 미안해.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쉬는 시간에 다시 한번 그 문자를 꺼내 봤더니 외롭지 않았다. 친구들이 교실 뒤편 자기 엄마를 찾아 웃고 떠들어도 슬프지 않았다.

모둠활동시간에 준기랑 서로 동생 역할을 하겠다고 살짝 싸웠는데 그때 준기엄마가 왠지 날 노려보는 것만 같아 주눅들긴 했지만 뭐, 괜찮다.

그 정도로 울 나이는 나도 이제 지났다.


태권도 학원이 끝나고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늘따라 유독 빈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 놀이터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아줌마들이 책가방을 메고 자기 애들을 기다리고 애들은 미끄럼틀과 시소를 오가며 신나게 놀다가 영어학원으로 가고, 또 다른 애들이 수힉힉원 샤틀버스에서 내려 한참 놀다가 저녁 먹으러 오라는 엄마들의 전화에 집으로 갈때쯤 나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오늘은 편의점 컵라면 사먹지말고 식당가서 먹어.

밥 먹어, 아들.

엄마 끝나고 얼른 갈게.


엄마 목소리 뒤로 아기가 옹알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재민아, 이모가 얼른 맘마 줄게요.


아기 이름이 재민이구나,

엄마 우리반에도 재민이가 있는데...... 엄마랑 좀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뚝 전화가 끊겼다.


저녁은 엄마 말대로 밥을 먹기 위해 우동집에 갔다.

우동집에 파는 돈까스에 밥이 조금 나온다.

오늘은 치즈돈까스 미니우동세트를 주문했다.

구석 2인용 자리에 앉으면서 나는 무채색이 되고 싶었다. 제발 아무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힐끔거린다.

직원분도 내게 혼자 왔냐고 물어보더니 갸우뚱거린다.

어쩌라고, 혼자 왔는데.

애기 밥을 먹이던 아줌마도, 온 가족이 푸짐하게 여러 메뉴를 시킨 테이블의 중학생 형도, 서빙직원과 수근거리던 주방 이모도 나를 보며 그 표정을 짓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 표정 말이다.

부모 없나, 애를 방치하나 물어보는 듯한 눈빛과

불쌍하다는 입 모양.

뭐 그러거나 말거나, 미니우동과 돈까스가 나왔다.

나는 맛있게 먹고 가면 끝이다.

칼로 다 썰어놓고 한 손으로 휴대폰 게임을 하며 볼이 터지게 돈까스를 우겨넣었다.

우동도 국물까지 다 먹었다.


엄마 카드로 계산하고 우동집을 나서니 아직도 일곱시 반이다. 여전히 집에 가기가 싫어,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놀이터에서 두 시간을 뭉갰다. 퇴근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마중나온 가족들도 보이고 운동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유모차에서 아기를 재우는 부부도 보인다.

낮엔 그네 경쟁이 치열한데 이 시간엔 내 것처럼 오래 타도 되니까 참 좋다. 나는 그네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들에 잠긴다.

오늘 공개수업 온 엄마들 다 봐도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쁜데 그게 좀 속상하다.

애들이 엄마 미모를 봐야했는데, 부러워했을텐데.

지후랑 윤서는 아빠까지 왔던데 왜 회사들을 안 갔지?

발표할 때 나는 박수소리가 없을 각오를 했는데,

다른 아빠엄마들이 박수를 크게 쳐줘서 그게 고마웠다.

우동집은 다음부터 가지 말아야지.

손님이 많아져서 혼자 먹는 게 좀 그렇다. 2인용 자리에 앉은 게 눈치도 보이고 빨리 먹어야 할 것 같고 사람들은 자꾸 쳐다보고, 영 싫다.

다른 식당을 알아봐야겠다.

아, 오늘 학교 숙제 있는 걸 깜빡했네!

주제별 글쓰기 너무 하기 싫은데......몰라.

이따 엄마가 씻을 동안 하든가, 그냥 안해야지.

칠판에 이름 한번 적히면 된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저쯤 엄마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달려온다.

나도 그네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렸다.

와락, 엄마가 달려와서 나를 꽉 안는다. 포근하다.

엄마 몸은 왜 항상 따뜻할까.


- 재민이엄마가 일찍 와서 엄마도 30분 일찍 나왔어.


집으로 걸어가며 아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했다.

우리반에도 재민이라는 녀석이 있어,

걔는 남잔데 엄마가 봐주는 애도 남자야?

엄마가 걔는 여자라며 우리반 재민이는 어떤 친구냐고 했다. 우리반 재민이는 복도에서 뛰다가 맨날 칠판에 이름이 적히고 도윤이랑 하루에 한번씩 싸워서 선생님한테 혼난다고 얘기하는데 왠지 비실비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엄마도 웃었다.


가로등 노란 불빛이 엄마랑 나의 걸음걸음을 비춘다.

엄마가 내 어깨를 조물조물거린다.

엄마 손바닥은 내 한쪽 어깨를 다 감싸고도 남는다.

내 손도 얼른 저렇게 크면 좋겠다.


밤 공기가 좋다.



오늘따라 달도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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