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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May 02. 2024

사촌동생의 결혼식

언제부턴가 결혼식에 갈일이 확 줄었다. 

몇 안되는 친구들은 이미 결혼을 했거나 비혼이고, 

사촌들도 대부분 이십대 중후반부터 시작해 서른 초반에 결혼을 마쳤다. 

내 나이가 마흔이니 십년쯤 전 한달이 멀다하게 결혼식을 다니다가 어느 순간 뜸해진거다. 


그러다가 얼마 전, 

아주 간만에 사촌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거의 십년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어릴 땐 서로 집도 왕래하며 다같이 모여 잠도 자고, 

몇날며칠 함께 쏘다니며 깔깔대던 사촌오빠들, 언니들, 그리고 동생들. 

살아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보고 지내다 보니 어느새 다들 폭삭 늙어있었다. 

자글자글한 주름에 탈모에 망가진 몸매까지...... 그게 왜 그렇게 서글프던지.

 

그들도 폭삭 늙어버린 나를 보며 서글펐을까? 

나도 살이 10kg이나 쪘고 피부도 축축 늘어졌고 머리털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끔 꺼내보는 추억 속 우리의 모습은 어리고 반짝이던 모습들 뿐인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린 건지.


많이 변하고 오래 못 봤지만 손을 잡으며 전해지던 따뜻한 마음, 자주 못 봐도 응원하는 마음. 

그런 모든 순간에 괜히 차분하게 가라앉는 하루였다.


게다가 신부 아버지의 축사는 왠지 마음을 더 침체되게 만들었다. 

딸을 너무나 아끼는 그 마음, 사랑으로 곱게만 키운 딸을 결혼시키며 울컥하는 그 사랑이 

직접 꾹꾹 눌러쓴 문장들로 구구절절 전해졌다. 

왜 그걸 듣다가 신부도 아닌 내가 눈물이 터졌는지 모르겠다. 

결핍에 대한 열등감인지, 선망인지. 


나도 날 아끼는 아빠가 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잘 안다. 

아빠 기준에서 가장 좋은 옷과 가장 좋은 음식을 먹이며 나를 키웠고, 

타고 나길 구두쇠이면서도 나의 일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춥거나 비가 오는 날,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 

아빠처럼 낡아버린 차로 아빠는 언제나 나를 데리고 다녔다. 그 사랑을 나도 잘 안다. 

뼛속부터 이기적인 아빠가 그 정도면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의 학대, 

나의 출산 직후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참지 못하는 흡연, 

가족들을 향한 폭언과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늙어서 이제 사람에겐 하지 못하고 집안 물건들에 하는 화풀이,

그로 인한 엄마의 깊은 상처 등. 


그냥 그런 사람이 나의 아버지이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지만, 

가끔 다른 아빠들, 흔히 말하는 딸 바보 아빠들, 

다정하고 표현 잘하고 감정적이지 않고 배려가 습관이 된 그런 아빠들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열등감이 치솟는다. 

그 날도 그랬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과거를 마주하고 우울해지는 건

각을 조금만 돌려 생각하면 

내가 과거보다 현재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래, 나는 나의 현재가 좋다. 

지금 하는 일, 생활, 하루하루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들과 맛있는 음식들에 만족한다. 

그렇기에 가끔 과거의 사람들과 만나면 지금같지 못했던 과거가 떠올라 이렇게 며칠씩 울적한 거다. 

지금만큼 똑똑하지 못했고 단단하지 못했고, 

모든 말과 행동들과 선택들이 돌이켜보면 수치스럽기만 한 십대와 이십대 시절의 나.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너무도 또렷하게 각인되어 가끔 이렇게 나를 덮쳐 짓누르는 그 시간들. 


5월 햇볕은 이리도 좋은데......

이번 감정은 또 며칠이나 갈지 모르겠다. 

거울 속 입꼬리를 누가 아래에서 잡아 당기는 느낌이랄까.

됐고, 얼른 현재로 복귀하자. 

과거든 미래든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이고 실재하는 건 현재 뿐이니까,

나의 노력이 닿을 수 있는 현재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지 말자. 


그럼 일단 맛있는 식사와 달콤한 디저트를 먹어봐야겠다.


또 조금씩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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