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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Feb 08. 2023

추억은 분명히 힘이 있어요

따뜻한 사랑의 기억

 10년을 지나 20년 전이 다 되어 가는 나의 고3시절, 우리나라를 심하게 강타했던 한 드라마가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모두들 모이면 그 드라마 얘기만 할 정도였다. 이런 명작이 나온 해에 하필 고3이라니, 마음놓고 드라마를 볼수 없던 처지가 슬프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10대를 무시하는가. 야자 시작 전 석식시간에 학급 tv로, 인강을 듣다 포털사이트로 빠져 관련 기사를 클릭하며 나는 반 정도는 그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줄거리는 기본, 배우의 이름이나 유명한 대사까지 다 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았던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부러질것 같이 여리여리하고 예쁜 연적에게 씩씩한 우리의 주인공이 이 말을 뱉으며 기싸움에서 이겼더랬다.  

'희진씨, 추억은 힘이 없어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었을 이 대사는 드라마의 흐름상 너무 맞는 말이었다. 연인과의 과거 추억들을 붙들고 애달파 해봤자 이미 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주인공을 비롯한 전국의 시청자들의 강한 염원에 따라 진헌이와 희진이의 추억은 힘이 없어야만 했고 보통 남녀사이의 사랑에선 추억은 별 힘이 없는 것이 맞을 것이다. 헌데 나는 조금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아주 평범했던 날이거나 아주 오래전이어도, 심지어 그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이 가고 없어도 여전히 밝고 따뜻하게 빛나며 때로는 100톤 트럭만한 힘을 발하는 억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그간 브런치에 접속조차 할수 없었다.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위태롭게 닿을 때까지 일을 해왔던 한해를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기어이 큰 사건이 터져 마음이 꽤 아팠던 날들을 보냈다. 2023년에 교단에 설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당시 읽던 소설을 빌어 하루에도 몇번씩 왈칵 눈물을 흘렸다. 자다가도 나를 심하게 비난하며 몰아세우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라 화들짝 깼다. 다시 설핏 잠들었던 어느 새벽, 꿈속의 나는 초록색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건 익숙한 반지였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늘 끼시던 반지. 그 후로 꽤 잘자고 일어났건만 어쩐 일인지 꿈에서 봤던 그 반지의 이미지만은 계속 남아있어 엄마에게 할머니가 끼시던 그 반지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니 '누구한테 갔는지 모르겠는데, 금 함량이 높지 않으면 아마 버렸을 수도 있다.'라는 답을 들었다. 오래된 반지 찾자고 평소 교류도 거의 없는 큰엄마들께 연락하기도 생뚱맞아 나는 그날부터 그 반지와 닮은 반지를 절박하게 찾아다녔다. 오팔, 말라카이트, 에메랄드...여러 유색 보석의 이미지를 검색하다 확신할수 있었다. 그건 비취(jade)가 분명했다. 인터넷으로 살까 하다 작고 투박한 내 손에 어울릴지 확신이 안 서 직접 보석가게를 돌아다녔다. 비취는 중후한 보석이었고 비취 반지 보러 왔다고 하면 '누가 낄거에요?'라고 물으며 나이에 맞는 디자인을 권하는 곳들이 많았다. 그렇게 추천받은 것들은 내게는 그럭저럭 어울렸지만 우리 할머니 반지와 조금도 닮아있지 않아 쉽게 결정을 내릴수 없었다. 타협할까 싶던 어느 날, 동네 보석가게에서 너무 나이들어 보이지 않으면서 비취의 존재감이 확실한, 마음에 드는 반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다. 절대반지를 찾으러 다니던 몇 주간, 심하게 아프고 툭하면 눈물을 쏟던 나는 생기를 조금씩 되찾았고 자다가도 깨게 했던 그때의 상처가 어느덧 내게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왜 그렇게 절박하게 반지를 찾아다녔을까? 약해질대로 약해져 있던 내가 할머니와 함께했던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웠나보다 생각한다. 할머니 집에서 자랐던 몇년 동안 매일같이 내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셨던 기억, 노란 옷감을 떼와서 내 원피스를 맞춰주셨던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누구와 다투거나 마음이 상해있을때 논리따윈 없이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시던 기억. 나를 만져주신 따스한 손길과 목소리. 이런 따뜻한 추억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살아있어 텅 비어버린 나를 다시금 채워준 것이 아닐까.


 며칠 전엔 아이와 블럭놀이를 했다. 그 블럭은 한동안 레고에 밀려 오랜만에 꺼내보는 것이었는데 그 블럭을 만지던 아이의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엄마, 이거 3월에 나 코로나 걸렸을때 같이 가지고 놀았지요? 그때 소파에서 엄마가 저를 꼭 안아줬잖아요."

작년 3월에 유치원에서 아이가 코로나에 걸려왔을 때가 있었다. 그때 뭘 가지고 놀았으며 뭘 했는지, 아이를 안아줬는지 어쨌는지 솔직히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건 아이가 격리하게 되어 맞벌이인 우리 부부가 얼마나 발을 동동거렸는지, 상사에게 어떤 심정으로 재택근무를 부탁했는지와 같은 힘든 기억들 뿐이다. 그런데 아이는 유치원에 가지 않고 엄마와 함께 있어 행복했던 기억을 따뜻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 기억을 예쁘게 간직하다 꺼내준 아이가 고마웠다. 또 힘듦을 내색하지 않고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줬던 당시의 내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가 그랬듯 나는 내 아이에게 장차 힘이 될 추억을 가장 많이 만들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오늘은 주문한 반지를 찾으러 가는 날이다. 이걸 낀다고 해서 내게 나쁜 일들이 안일어나는건 아니겠지만 할머니가 주신 추억이 더 가까이에서 힘을 낼것만 같다. 그 힘으로 내가 충분히 강해진다면 그땐  내 손길이 닿는 존재들에게 단단하고 따뜻한 추억의 씨앗을 많이 심어주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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