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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Luna Sep 06. 2022

전화위복

휴직


참을 수 없는 무료함


"무료하다: 흥미 있는 일이 없어 심심하고 지루하다."


참으로 무료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생활이 견딜 수 없이 무료했다. 나는 업무 습득과 적응이 빠른 편이다. 업무가 익숙해지면 단순 반복처럼 느껴지고, 어떻게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업무 개선을 시도한다. 내 나름대로 일에서 재미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공공기관은 별거 아닌 거 같은데 하나만 개선해도(가령 엑셀 수식 활용 등) 업무 처리 속도 등이 확 달라질 수 있는, 관행적으로 답습하는 답답한 업무들이 널렸다. 


민원 응대 업무가 견딜 수 없었던 이유는 감정 노동 때문이라기보다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공공기관도 챗봇 상담, 맞춤형 정보 제공 서비스 등을 적극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뒤늦게서야 깨달았지만, 나는 관습적 안정성이 낮고 탐색적 흥분이 높아서* 루틴한 업무보다 새로운 업무를 추구하는 기질이 강하기 때문인 듯하다.

*TCI검사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에서 일의 재미는 4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활동 자체가 주는 재미, 몰입의 즐거움 △원하는 판을 짜서 일하는 재미, 자기 결정권의 문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재미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재미.


업무에 익숙해지는 단계에서 몰입의 즐거움을, 업무 효율화를 고민하는 단계에서는 원하는 판을 짜서 일하는 재미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재미는 주어진 업무를 끝내갈 때 자연스레 느끼는 성취감에서 느꼈던 것 같다. 


문제는 업무 성격에 기인한 것이 아닌, 내가 적극적으로 발굴해낸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재미는 정말로 크고 중요한데, 이건 복불복 같다. (물론 조직의 분위기는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인사가 꼬였다고 한다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가족 계획과 아울러 부처 이동을 하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자리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절실히 느낀 점은 ‘아... 조직은 개인을 배려하지 않는구나’였다.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다 휴직을 선택했다. 나름 잘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뒤처지고 싶지 않은데 휴직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만으로 절망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만 하기로 했다. 


이후 후임자들이 연달아 의원면직했다. 다급해진 조직에서는 휴직 중인 나에게 업무 도움을 요청하였고, 기꺼이 도와드렸다. “인사가 꼬였다. 나를 그곳에 보내려던 게 아니었다”는 말을 몇차례 들었다. 


사기업을 다니다가 뒤늦게 공무원이 된 30대 동료 3명이서 밥을 먹었다. 셋다 공무원 선택을 후회한다고 했다. 1명은 의원면직 했고, 1명은 사기업 연봉의 절반을 받으면서 격무부서에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고, 마지막 나는 지금 휴직 중이다. 


나는 왜 맨날 힘들지. 끈기 없는 인간인가 자책했다. 정말로 버티는 게 맞는 걸까. 모르겠다.


이렇게 갭이어 기간을 가지면서 차분히 앞으로의 삶을 설계할 수 있어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 가고 있어서 지금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전화위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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