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부모인지라
소년보호사건을 처음 접하게 된 건 몇 해 전 일이었다.
변호사로서 일한 지 한참 지난 이후 첫 소년보호 사건을 하게 된 셈인데
당시 그 소녀도 지금은 성인이 되었을 것 같다.
그 소녀의 집안 환경은 대다수의 다른 보호소년들과는 많이 달랐다.
소년 재판부 판사님도 놀랄 정도로, 남부럽지 않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부모와 소통하지 못했고,
미성년자가 밖으로 돌다 보면 범죄에 가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결국에는 가벼운 보호처분을 받았지만, 부모는 집으로 돌아온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여전히 어려웠고
내게 "변호사님한테는 속마음을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으니 몇 달 정도 만나서 상담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는 부탁을 해왔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지만, 나 역시도 그 친구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잘 자라주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에
2주에 한 번쯤 만나서 차 한잔 하며 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생각을 이야기주곤 했었다.
물론 이미 그때 나를 꼰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몇 해 전에 비하더라도 최근 소년보호사건은 크게 늘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 거다"라는 말을 흔하게 하던 예전 같았으면
그저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조금 혼나고 말 일도,
요즘에는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물론 가해행위를 당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정도 가지고 뭘'하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법과 규칙으로 해결하려는 제도에는
바람직하지 못한 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소년보호사건을 하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난다.
부모가 면담을 오는 경우는 그래도 대체로 "어쩌다 한번 잘못된 행동을 한" 친구들이다.
부모는 본인이 알던 자녀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에 대해 자녀를 나무라다가도 스스로를 자책하고,
법원에서 너그러운 처분이 나오기를 바라면서도 아이가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 정도의 따끔한 경험으로 기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나도 부모인지라 (아직 초보자에 불과하지만) 자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부모의 애달픈 마음도 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도 사춘기를 겪어본 사람이니까
그들이 얼마나 불안정한 마음일지도 가늠해 볼 수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리고 뉘우친 다음 다시는 반복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꼭 엄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종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하는, 요즘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너무나 대담하기 짝이 없고, 때로는 겁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자는 의견에는 반대이다.
아이들을 더 무겁게 벌한다고 해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인지, 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잘 자라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범죄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에게는 조금 더 너그러운 잣대가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공평한 기회나 정당한 보상이 결여된 아이들도 생각보다 많고,
누군가의 사랑과 가르침을 못 받고 자란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수학 영어처럼 입시를 위한 과목 공부보다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떤 행동이 허용되지 않고 있는지, 허용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어떤 위기가 오는지에 대한 교육이 좀 더 필요하다.
내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 잘 모르고 저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미 사건이 된 이후 되돌리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전에, 엄격한 교육을 통해서 이를 인지시키는 것이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적은 수고로 가능한 일이기에 이미 보호사건으로 법정에 서는 아이와 부모를 바라보는 변호인(보조인)의 마음은 안타깝다.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부모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이겠지만,
내 아이를 깊이 사랑해 주고,
그리고 다른 집의 아이도 충분한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자랄 수 있도록 서로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앞으로의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게 하는 첫 단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