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까페 포르퐈보르) "커피 한 잔 주세요!"
내 나이 23살 멕시코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머나먼 타국으로 간 계기는 "수경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라는 취지였다.
그렇다면 '수경이는 어떤 상태였는가' 생각해 보면, 친구들은 모두 대학을 갈 때 아르바이트로 일상을 보내는 무기력해 보이는 '청년'이었던 것 같다.
저를 바라보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결단을 내리시고 사촌언니가 대학을 다니고 있는 '멕시코'로 나를 보낼 것을 제안하셨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좋지 못하여 동생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둬야 하는 매우 암울한 상황이었고 나는 그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 둔 몇 백 이외에 다른 자금이 없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부모님을 설득했고 가지고 있던 돈을 다 털어 여행자 수표로 바꾸고 얘기가 오고 가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먼 타국으로 보내졌다.
"보내졌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멕시코'라는 나라에 대한 정보 하나도 없이 비행기표가 예약되고 이미 난 비행기에 탑승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까지 9시간 정도, 비행기를 트랜스퍼(trancefer)를 하기 위해 LA 공항에 체류한 후 멕시코까지 3시간을 갔으니 한국에서 출발한 지 15시간 만에 '멕시코시티국제공항'에 도착했고 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18시간이 족히 걸린 듯하다.
사실 멕시코에 가서 있었던 일을 쓰자면 한 두 편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까지.
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한국으로 말하면 '을지로'쯤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레포르마라는 우리나라로의 '세종로'에 해당하는 큰길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대체로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무슨 영문에서인지는 몰라도 멕시코 시티 도착하고 이틀 뒤 UNAM universidad(우남대학_한국의 서울대)에 있는 어학코스에 등록을 하고 몇 주 뒤부터는 학교에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영어도 잘 못했고 스페인어는 단 한자도 못했기에 '내가 왜 이 나라에 와서 이러고 있나...'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사촌언니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를 들들 볶았다.
어찌 됐든 나는 언니와 멕시코 시티 여기저기를 다닌고 한 달쯤 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어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나의 일상은 오전 6시 기상, 아침으로 식빵 두 쪽과 계란 프라이, 사과 한 알과 우유/ 한 잔을 마신 후 학교로 향했다. 안니가 알려 준 대로 마을버스를 타고 누구보다 먼저 학교에 도착하여 커피 한 잔을 했다.
멕시코는 커피 원산지로 커피의 싱싱하고 향긋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한국에서 느끼지 못하는 여유와 행복을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먼 타국에서 맛보는 커피에 여러 감정과 의미가 맴돌았다. 내가 커피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커피 얘기를 하려고 케케묵은 27년 전 멕시코행을 꺼내 들었다.
문득, 27년 전 대한항공에 오르던 그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이 떠오르다가도, 이른 아침 학교 정원과 대학 교정에서 마셨던 고소 하면서 향긋했던 싱싱한 아메리카노가 생각났다. 젊은 날의 아과 즐거움이 동시에 묻어있는 나라. 아참에 원두를 갈아 드립커피를 내리며 잠시 잠깐 그리워졌다.
"café bueno, café delicioso "
"카페 부에노, 카페 딜리시오소!"
"좋은 커피, 맛있는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