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난독증 탈출기 _ 연재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하기 전인 6세경부터 한글 방문 수업을 했다. 8세에 학교에 입학하니 1년 반쯤 전부터 한글을 배우면 학교에 들어가서는 무난하게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7세가 지나도 아이는 도무지 한글을 깨치지 못했다.
'학교 입학 전까지는 한글을 뗄 수 있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아이와 함께 한글 숙제를 하려는데 1년 6개월 한글 수업을 했음에도 낫 놓고 ㄱ자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의 그 당혹감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혹여라도 나의 당황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들킬까 봐 표정 관리를 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아직도 한글을 익히지 못한 걸까?'
나는 다음날 학교로 올라가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면담을 했다. 아이가 언제부터 한글 수업을 해 왔는지, 학교에 입학한 지금 한글을 전혀 읽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우선 선생님과 공조를 하기로 했다. 집에 도면 학교에서 배운 한글로 모음자음 놀이를 하며 놀듯 예습과 복습을 했고, 선생님은 아이가 학교 생활에 부담을 갖지 않도록 도와줄 좋은 친구를 만들어 주셨다.
그러면서 이틀에 한 번 정도 선생님과 아이의 상태를 살피며 면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아이와 비슷한 유형의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사례에 대한 학술지를 통해 발견했다. 이름하여 '난독증'이라고 했다. 다음날 그 기사를 출력해 학교로 갔고 담임선생님과 내용을 공유했다.
선생님도 처음 보는 <난독증>을 감당해야 했다. '담임 선생님의 조력이 아니었다면 지난한 과정을 어떻게 견뎠겠나' 싶다.
대부분의 난독증 학생들은 학습부진에 빠지고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공부는 못해도 괜찮았다. 학교생활의 즐거움을 잃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방법을 써야 했고, 그날부터 학교 담임선생님과 학원 원장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학교 담임은 등교가 즐겁도록 세심하게 챙겨주셨고, 학원 원장님은 등원하는 지원이와 일대 일로 앉아 국어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셨다. 어느 결에 나의 아이는 책을 거의 외워갈 정도로 교과서에 익숙해지고 글을 모르지만 소리를 기억하고 읽으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가 더듬거리고 읽으면 주위에 친구들이 같이 읽어주어 글을 모르면서 글을 읽는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나의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난독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1학년 담임부터 6학년 담임까지 글을 읽지 못해 아이가 곤란을 겪지 않도록 도와주셨고 아이와 함께 글을 읽어주는 친구들이 늘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입학할 때 즈음 나는 아이에게 "지원아, 혹시 네가 난독증인 것을 알고 있니?"하고 조심스레 물으니
"글을 읽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난독증'이라고 하는지는 오늘 처음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럼, 지원이가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선생님과 친구들이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하고 물으니, "엄마가 매년 학년이 바뀌면 선생님께 편지를 써서 배달 심부름을 시킬 때 눈치를 챘어요. 엄마의 편지가 선생님께 배달되면 선생님이 유심히 저를 살펴주셨거든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매년 학교 적응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발견해서 눈에 보이지 않게 잘 도와주었다.
"ㅇㅇ아~ 내가 너를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니?" 아이가 혼자 앉아 있는 친구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래.... 그랬구나. 자세히 알지 못해도 친구들이 너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전달되었구나. 그리고 너도 지지 않는 향이 되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있구나...'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글밥이 많은 글을 읽을 때면 크게 호흡을 한 후 읽어 내려간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지원아, 괜찮아...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 아이가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가지고 학교 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나의 아이는 잘 크고 있다.